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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인지 시샘인지 조ㅎ용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연은 장가를 가지 않아 좋은 글을 쓸 수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성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숨어있는 진실을 알아야만 진정한 작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는 손목에 힘을 빼야 비로소 좋은 글을 쓸 수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랑은 너무 많은 글들을 쓰다 보니 이제 지쳤노라고 엄살을 부렸다. 글을 쓰지 않는 것들은 그러니까 글쟁이가 아니라 삶을 허비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말도 덧붙였다. 맞는 말, 같기는 했다. 모두 잘 나가는 작가들이었고 성을 빼고는 모두 오랜 글동무들이었다. 글쟁이 13년 차, 그러나 용이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는 꼴랑 두 권이었다. 그것도 하나는 밥벌이를 위해 울며 밑 닦는 식으로 쓴 청소년평전이었다. 연희에 들어오기 위해서 써낸 신청서에는 지금까지 낸 책이랑 받은 상이랑 뭐 그 따위 것들을 적는 곳이 있었다. 먹먹했다. 한참 들여다보아도 쓸 말이 없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일찍이 시와 글씨에 열중했다면 작은 초가 한 칸으로 넉넉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빈 여백으로 내미는 신청서가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래도 하루하루 밥 벌어 살아가는 일에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거짓이었다. 글을 쓸 때는 먹고 사는 일이 좇아온다고 투정을 부렸고, 먹고 사는 일에는 내가 그래도 작가입네 열심을 다하지 않았다.
나무이고 싶었다. 바람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실은 바람이었다. 바람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바람도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뭇잎 하나. 그것도 모르고 지랄을 떨고 다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거창하게 문학이랄 것도 없이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스무 일곱에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세상을 다 알지도 못하고 세상을 다 겪지도 못하고 너무 이른 나이에 명함을 하나 받은 꼴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용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다녔다. 등단작을 보고 몇몇 계간지에서 소설을 보자고 했다. 목에 들어갔던 힘이 어깨로 내려갔다. 선배들을 무시했고 동무들을 업신여겼다. 술을 마시면 아무나 붙잡고 싸움을 걸었고, 여자들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함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여기며 지냈다. 자유에 묶여 있는 줄도 모르고 용은 살아왔다. 그러면서 고귀한 척 똥폼은 다 잡고 다녔다. 용은 지난 며칠 전의 술자리에서 랑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때 내가 왜 니 얼굴에 물 끼얹었는지 알아? 모르지? 야, 너네 엄마만 식당하냐? 우리 엄마도 식당했다고. 그래, 임마, 삼오식당. 근데 말이야. 아줌마한테 심부름 좀 시키니까, 니가 그러더라. 왜 그렇게 함부로 하냐고. 지랄 씨발 놈. 그 아줌마들 그러라고 있는 거야. 그래야 돈도 받고, 씨발. 다 너 같으면 누가 그 아줌마들한테 일을 시키냐, 어? 그리고 말이야, 넌, 왜 모르는 사람한테만 친절한척 지랄이야. 좆 같이 사는 주제에. 근데 나는 씨발 지금 너보다 그때 니가 더 좋기는 하다. 쌈닭 같던 놈이 비실비실 뭐냐? 너, 사람 되면 소설 못쓴다.
모른척 지내왔던 부끄러움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용은 차라리 성이 부러웠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눈썹처럼 지난 날들이 깨끗이 사라져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눈썹을 밀면서까지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성의 사라져버린 눈썹을 용은 다짐이라고 여겼다. 곧 있으면 연극을 개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은 그 동안 너무 게을렀다고 했다. 게으른 자신을 책망하며 성은 눈썹을 밀었다. 이제 한 눈을 팔지 않을 것이다. 눈썹이 없으니 헛된 바람에 휘날리지도 않을 것이다. 비가 오면 그대로 눈앞으로 스미겠지, 그렇게 세상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성은 다짐하지 않았을까, 용은 그 다짐이 부러웠다.
연희에 들어오면서 한 번쯤 미친 것처럼 소설만 쓰겠다고 용은 다짐했다. 미뤄왔던 장편을 끝내고 몇몇 단편을 써야지 마음먹었다. 용은 자신이 나무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큰병을 얻었다. 그 병치레를 하다 보니 어느 사이 석 달이 훌쩍 흘러버렸다. 연희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 그건 용의 잘못일까 게으름일까?
끈을 놓지 않고 겨우겨우 써왔던 글들을 그나마 연희에서 하나로 묶었다. 『햇볕 아래 춤추는 납작거북이』. 살아줘서 참 고마웠다. 집안은 가난했고 어버이는 자주 싸웠다고 작가의 말에 용은 썼다.
싸움을 피해 친구 녀석의 집을 찾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무렵 용은 마루 밑이나 쪽방 농 뒤로 몸을 숨겨야 했다.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낡은 책들을 읽으며 그 지루한 시간들을 용은 견뎠다. 그것이 소설책이었는지 시집이었는지 혹은 삼류 주간지였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책’이라는 사실에 용은 감사했다.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노라고 용은 감히 생각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글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용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아주 당연한 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돌아보니 소설가라는 이름만 얻었을 뿐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엉터리 글쟁이로 흘려보낸 시간이 십 년이었다. 그 즈음, 용은 소설을 버리려 마음먹었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설이었다. 트럭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들었다. 빚을 내어 트럭을 사고 서툰 솜씨로 그 안을 꾸몄다. 처음에는 인테리어를 하는 누군가에게 개조를 부탁하려 했는데, 아뿔싸, 트럭을 살 때 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해 왔다.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톱을 들고 망치를 들었다. 하나하나 땀을 흘리며 차안을 꾸미다가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크게 들이켰을 때 땀 냄새 사이로 알 수 없는 향기가 은근하게 용을 잡아끌었다. 그건 나무에서 나는 향이었다. 아궁이 앞에서 누룽지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냄새, 혹은 첫사랑을 기억할 때 떠오르는 아련한 향기. 용은 향에 취해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땀을 흘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겨우 깨달았다.
소설을 멀리하고 용은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건축과 가구에 관한 수십 권의 책들을 읽으며 용은 소설이라는 길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죽는 사람들, 어미의 자궁이 집이고 죽어 들어가는 무덤이 집이었다. 집안에서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고, 집 안에서 올망졸망 모여 내일을 꿈꾸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서툰 글이 단 한 번이라도 저들에게 따뜻함을 주었을까를 생각할 때 용은 부끄러워졌다. 뭉툭하고 못생긴 손으로 글을 쓰지 않고 집을 짓는 목수가 되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했다. 비록 작고 허름한 집일지라도 그곳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밥을 안치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지친 하루를 달래며 고단한 몸을 누이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집을 짓는 것이 소설을 쓰는 일 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은 아닐까, 생땀을 흘리며 나무와 씨름하고 땅을 매만지는 일이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일 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용은 생각했다.
아기를 잠재우는 자장가처럼 달빛이 슬며시 술잔 안에 스몄다. 달빛처럼 슬며시 글이 다가왔던 날들을 용은 떠올렸다.
씨발, 문학이 도대체 뭐야?
뜬금없는 물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멀뚱히 눈을 들어 용을 바라보았다. 아, 왜 김치공장 밖에 나와서 김치 이야기하는 거드래요. 연이 대답했다. 너, 취했냐? 미가 물었다. 술 한 잔 받어. 성이 술을 내밀었다. 히히, 이 새끼 오랫 만에 지랄이네. 랑이 지청구를 놓았다. 씨발, 그게 어디서 오냐고. 용이 다시 한 번 누구랄 것도 없이 물었다.
용은 이제야 작가(作家)라는 이름 뒤에 집을 붙인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달빛이 점점 굵어졌다. 가만히 돌아보니 한 번도 미쳐보지 못했다. 살을 찢는 아픔에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늘 도망다녔다. 부끄러웠다. 용은 슬그머니 술자리에서 일어나 203호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미치도록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 어둠 속에서 늙어버린 사내 하나가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저게 누구일까, 용은 자못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