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 세상에는 절대로 당연한 게 없다
꼬꼬마 시절에는 엄마, 아빠가 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의무가 있다고 말이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감사함보다는 당연함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모든 순간이 감사해야 하는 일이고 이 세상에는 절대로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냈습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가게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잘 나누는 것은 물론, 지나가는 행인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외향적이었습니다. 집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해가 쨍쨍하던 날이면 무턱대고 집보다 시원한 경로당을 찾아갔습니다. 외할머니와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서늘한 마루에 앉아 놀았습니다.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옥수수를 먹기도 하였습니다. 도심 속 시골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나를 사랑해 주시던 분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랑 또한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말이죠.
20살, 갓 성인이 되고 이제는 내 앞의 인생을 창창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앞둔 작은 새싹이 기대를 부푼 것이죠. 두근거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저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살을 부대끼고 지내던 사랑하는 사람이 별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인생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또한 감사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한 점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손과 발이 다 있는 것에 감사, 머리카락이 있음에 감사, 비 올 때 눈에 들어가지 않게 눈썹이 있음에 감사 등 그동안 사소하다고 느껴진 것부터 감사함을 느끼기로 하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찬물로 손빨래를 했을 때, 세탁기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매일마다 즉석식품을 먹어야 할 때, 집밥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공중 화장실에서 찬물로 씻을 때, 집에서 나오는 온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겪었던 이러한 값진 시간 또한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귀한 인생의 경험이죠.
그동안 인생에서의 감사한 순간을 생각하며 기록하면서 다시 한번 이 세상에는 절대로 당연한 게 없다는 것을 되뇌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일상 속에서 작은 감사함이라도 누리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빨간 단풍잎과 햇살처럼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