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구워진 마음에 대하여
어제는 빵을 구우면서 오븐 타이머 소리를 못 들었다. 내가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마음이 너무 멍했거나 했을 것이다. 빵은 생각보다 오래 오븐에 있어서 껍질은 거의 검게 타버렸다.
칼로 썰어보니 속도 다소 퍽퍽한 느낌이 들었다. 수분이 날아간 자리에는 뻣뻣한 공기와 무리한 열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마음도 그렇다. 꺼내야 할 타이밍을 놓쳐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겉이 타버리는 것뿐 아니라 속도 건조해진다. 누군가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고 서운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속으로만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어느 순간엔 내 마음도 제 맛을 잃는다.
나는 참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타인의 감정을 먼저 고려하게 되고 내 감정은 뒷전으로 미루곤 했다. ‘지금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굳이 꺼내서 뭐 하나’ 그런 마음들이 내 감정의 온기를 빼앗었다. 자꾸 미루고 내 버려두었던 말들로 가득 찬 내 안은 열을 밖으로 내뿜기 전 온통 희뿌옇게 차오르는 오븐 속 같았다.
불필요할 만큼 오래 구워진 마음은 누구 앞에서도 부드럽지 않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아주 가볍게 하는 말에도 이상하게 날카롭게 반응할 때가 있었다.
속은 이미 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온도를 올린 게 아니라 내가 꺼내지 않은 탓이었다. 빵은 ‘너무 늦게 꺼낸 것’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먹기 불편해할 뿐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서운함, 지나간 말, 견디다 놓친 감정들. 모두 우리 안에 남는다. 제때 꺼냈더라면 조금 더 말랑하고 따뜻했을 그 마음들.
나는 오늘의 반죽을 어제보다 조금 덜 굽기로 했다. 빵이 조금 덜 익더라도 속이 촉촉하고 부드럽다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 서툴고 덜 여문 말이라도 너무 늦기 전에 건네고 싶다.
“조금 덜 구워져도 괜찮아.”
“말이 어색해도 말하는 게 좋아.”
“그땐 서운했지만 지금 말해도 될까?”
이 짧은 말들이
내가 나 안에서 스스로 굳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도 조금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오븐엔 타이머가 없다. 그러니 매일의 마음은 매일의 감각으로 꺼내야 한다.
‘이쯤이면 된 것 같아.’
그 감을 믿어도 되는 사람이고 싶다 이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