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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Dec 15. 2020

첫 신혼집 꾸미기

오키나와 중고 가게 쇼핑

한 번도 떠나 살아 본 적 없던 서울을 떠나 정착하게 된 첫 우리 집.

화려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을 거친 물건들이라도, 큰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온기를 머금어낸다.

이 집에서 몇 계절이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해!!


 남편 이 열심히 구한 집을 우리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가구와 가전을 구해야 했다. 처음에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6개월가량 짧은 기간 동안만 머무를 계획이었고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최소한의 것을 싸게 사는 것'이었다. 처음 독립을 꿈꾸며 하나쯤 품고 있던 신혼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일단 그것은 뒤로하고 반강제로 미니멀리즘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이주를 준비할 때부터 오키나와의 중고 가게를 많이 찾아보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구글과 한인 커뮤니티를 포함해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없었다. 한참의 검색 끝에 물망에 오른 곳은 Re-Ok와 2nd street였다.


Re-Ok

 도착한 주말부터 우린 발 빠르게 돌아다녔다. 먼저 Re-Ok를 들렀다. 이 곳은 Today O!K라는 가구 샵에 딸린 중고매장이기 때문에 주로 가구 위주로 전시되어있었다. 새 제품을 전시해둔 매장과 따로 떨어져 지하에 위치한 중고매장은 그리 쾌적한 편은 아니었다. 가전제품들도 몇 개 있었는데,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냉장고의 문을 살짝 열자마자 처음 맡아보는 매캐한 냄새가 공격해왔다. 이래저래 신혼 혼수를 마련하기엔 영 적합하지 않은 가게 같았다.

중고품이 제 때 팔리지 않으면 30% 이상 가격을 할인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게에는 이 곳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재밌는 판매정책이 있다. 중고제품에 첫 가격을 붙이고 팔리지 않으면 1주일 뒤 30% 할인을 해주고, 그 뒤로도 팔리지 않으면 1주일에 10%씩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면 적당히 눈치를 보며 과감하게 일주일을 기다려보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전시된 여러 소파를 앉아보다가 우리는 구석에서 한 소파를 발견하게 되었다. 인조가죽으로 된 낡은 소파는 가죽이 여기저기 헤져 인기가 없었는지, 한 번 앉아보기도 힘든 구석에 있었다. 우리는 볼품없는 그 소파에 이상하게 끌려서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한 번 앉아보았다. 오래 쓰던 소파와 같은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니 소파의 한쪽 팔걸이는 유독 심하게 가죽이 벗겨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추측컨대 이 전 주인의 머리 모양으로) 동그랗게 닳아있었다. 소파 커버를 씌우면 되니 편하기만 하다면 흠집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아 이미 몇 번이나 가격이 떨어져 있던 덕에 우리는 소파를 단 돈 2000엔에 구입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한 가지 복병은 배달비였다. 한국은 워낙 배달시스템이 잘 되어있기도 하고, 사실 내 손으로 가구를 사본 적이 없어서 배달비를 고려하지 못했는데, 차로 30분인 우리 집까지의 배송비는 최소 4000엔이었다. 특이한 것은 아파트 1층까지 배달해주느냐, 아니면 집 안까지 배달해 주느냐에 따라 배송비가 다르다는 점이다. 오키나와의 대부분의 3층에서 5층 정도의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2000엔짜리 소파를 위해 배달비로 4000엔, 그리고 소파 커버로 2300엔을 지출했다. 오랫동안 외면받았던 소파 입장에선 꽤나 호강한 대접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1년을 함께 지내며 우리는 이 소파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가격이 무색하게도 앉으면 '아'소리가 절로 날만큼 편했고, 특히 팔걸이에 머리를 대면 그 순간 잠에 들곤 했다.


“그래, 이 소파 전 주인이 머리 자국이 날만큼 누워있을 만했네”

“너무 편해서 못 일어나고 생을 마감한 건 아닐까?”

라는 말은 우리의 단골 농담이 되었다.



2nd street

 두 번째로 찾아간 2nd street는 오키나와에 지점이 네다섯 개 정도 있는 중고샵으로 비교적 가게와 물건이 깨끗하게 정비된 것이 장점이다. 가전, 가구뿐 아니라 옷, 신발, 장난감까지 제품의 폭이 넓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서 집을 다 꾸린 후에도 우리는 종종 들러서 구경하곤 했다. 우리는 하루 동안 근처의 두 지점을 왔다 갔다 하며 커다란 4인용 식탁과 의자, 세탁기, 냉장고 그리고 무선청소기를 구입했다. 소파를 살 때 얻은 교훈으로 이번엔  배송비를 줄이고자 최대한 우리 차로 옮기고 싶었다. 점원에게 밖에 주차된 우리의 660cc짜리 경차를 가리키며 번역기를 돌려 '저 차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요?'하고 물었다. 점원도 확신이 서지 않아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단 점원이 도움을 받아 차 뒷 좌석을 접어 눕히고 4인용 식탁부터 트렁크부터 넣어보는데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역시 안 되려나 싶다가 식탁을 거꾸로 뒤집어서 넣으니 성공! 하고 간신히 들어갔다. 그렇게 식탁을 실은 뒤 30분을 운전해서 집에 먼저 모셔다 두고, 다시 가게로 돌아와 세탁기와 냉장고를 하나씩 싣고 두 번을 더 왔다 갔다 했다. 마지막엔 도와준 점원 분도 후련한 듯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경차, 심지어 우리나라 경차보다도 더 작은 660cc 차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다행히 우리 뿡뿡이는 잘 해내 주었다. 덕분에 은 의자를 최대한 앞으로 당긴 채, 정말 제한된 공간에서 운전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내 기억에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의 얼굴이 거의 앞유리에 닿을 뻔했다. 그렇게 꾸깃꾸깃 몸을 욱여넣고 가면서도 우리는 집이 완성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웃었다.

 "이야~ 이렇게 하니까 운전이 더 실감 난다"
 "응. 꼭 자동차 게임하는 것 같네!"



 이후로 니토리, 이온몰을 돌아다니며 러그와 커튼, 매트리스만 사고 나니 우리 집은 완성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1주일 만에 집을 꾸리다니, 우리 성미가 정말 급한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필요한 것으로 후다닥 꾸민 집은, 다행히 미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우리 맘에 쏙 들었다. 우리도 한국에서 신혼집을 시작했다면 남들처럼 혼수로 가전, 가구, 그릇을 가득 사서 채웠을 테지만, 오키나와에서 미니멀리즘으로 한 번 살아보니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진 않네'싶다. 한국에 돌아와 두 번째 신혼집을 꾸밀 때에도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것으로 꾸리게 되었다. 다른 점은, 오키나와에서는 중고샵과 저렴한 쇼핑몰을 전전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훨씬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무조건 행복을 보장하지 않다는 연구[1]도 있듯이, 그 작은 선택지에서 골랐던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첫 신혼집이자 그곳이 오키나와였다는 추억 보정 필터가 껴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1] Barry Schwartz가 TED 강의에서 소개한 책 'the paradox of choice'
    https://www.youtube.com/watch?v=VO6XEQ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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