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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샘 Apr 24. 2024

왜 8시 30분에 업무를 시작하는가?

사업 수완은 없지만 다른 게 있어요!

남편과 아이가 모두 밖으로 나가면 거실 시계는 8시 25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저는 거실 책상에 앉아 일을 봅니다. 이때 시각은 늦어도 8시 35분쯤 됩니다. 



설거지도 이미 끝냈고, 세수도 다 했고, 환복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얼굴이라는 점만 빼고 그대로 출근해도 될 정도니까요.


"김샘, 급하게 부르면 화장도 하지 말고 와 줘야 해요!"


학교 근처에 사는 저는 명퇴 축하 식사 자리에서 교감선생님의 이런 부탁이 있었습니다. 담임교사가 출근을 못하게 되면 저를 부르겠다며 농담조로 말씀하셨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다행입니다. 

경우를 대비하는 건 아니고요.


저도 모르게  이런 루틴이 고쳐지지 않아 오늘은 헛웃음이 났습니다. 


'왜 이래? 늘어져봐야 정신 차리겠어?'


한 번쯤 제 마음속에 이런 속삭임이 있을 때가 있어요. 커피를 타서 느긋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켜고 생생 정보통부터 미니 시리즈 재방까지 훑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제가 직장을 다니고 있고, 하루 휴일이라면 그렇게 늘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데요. 


매일 이어지니 이게 또 달라지네요.


우선, 해야 할 일이 많기는 합니다. 퇴직 후, 한 달이 지나고 서서히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프리랜서를 꿈꾸는 저는 열정은 있었고, 작년에 낸 책 한 권은 있었지만 수완이 없었습니다. 제가 사업 수완이 없다는 걸 명퇴 후 알아차리고 이를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일이 조금씩 들어오더라고요.


수완이 없어도 먹고 살 구멍은 있다! 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고 봅니다. 


이번 주 금요일 당장, 오클랜드(뉴질랜드 최대 도시, 저만 몰랐나 봅니다. )에서 한국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사 분들을 대상으로 무료 줌 강연이 있답니다. 4-5명으로 예상했는데 최소 30명에서 최대 50명의 선생님이라고 하니, 이 아찔한 특강을 덥석 오케이 한 제 자신이 무모하지만 자랑스러웠습니다. (뭐, 어쩌겠어요? 이렇게라도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부여할 밖에요)


그분들께 초, 중등 아이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도해야 하는지에 관한 글쓰기 특강인데요. 친구가 오클랜드 한국어 교사라서 이런 강연이 추진되었습니다. 재능기부인 셈인데 재능이 조금이라도 지구 반대편 선생님들께 쓸모가 있기를 바랄 뿐이죠.


그리고 내일은 당장 리터러시 코치 자격증 마지막날이라 제가 주도할 사례 분석 및 발표도 있답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 늘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초기 문해력에 부족함이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진단하고 도와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요. 때마침, 대학원 인연이 있던 교수님께서 좋은 수업을 열어 주셨어요. 읽기 진단 검사를 배우면서 문해력 공부에 찐하게 다가간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입력(리터러시 코치 과정)과 출력(오클랜드 강사님 대상 재능 기부)이 오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아름다운 조화라 말할 수 있는데 정작 이를 소화해야 하는 저는 아직도 버벅거리고 있답니다. 



며칠 전 친구가 명퇴 신청을 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기 명퇴자로서 퇴직 후, 어떤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


"음... 세 가지가 필요하지!"


"뭐야?"

(귀를 쫑긋거리는 소리.. 저는 들었습니다. )


"첫째는 문제해결력! 학교 밖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면 많은 일이 새롭고 어려워. 경험한 적이 없거든. 그러니 스스로 알아서 잘 헤쳐 나가야 해! 둘째는 시간 관리력. 자칫하면 하루가 그냥 가! 생계형 명퇴 교사에게 하루는 정말 소중하거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에 따라 내 앞으로의 생계가 달려 있어. 마지막으로 유연한 사고! 학교 안에 생활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 어떤 틀에 갇힌 느낌이랄까? 그러니 앞으로는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일이 닥치면 유연하게 생각해 봐. 말랑하게!"


이렇게 알은척은 제가 다 했습니다. 


재수 없게 받아들이지 않고 친구는 명퇴하면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하자면 저에게 또 멋진 일정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멋진 일정조차도 제게 (여기서 밝히겠습니다. ) 교사였을 때 받은 월급 이상은 벌어다 주지는 못한다는 거죠. 그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된 셈이죠! 아.... 반만이라도 벌었으면..(속닥이는 중입니다. ) 


여전히 돈을 벌 수완은 오리무중이지만 그래도 8시 30분에 업무를 시작하는 성실함과 아낌없는 조언을 줄 수 있는 기버 정신과 한국어를 사랑하는 나라사랑 마음은 제가 갖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모든 점들이 제게 좋은 일로 찾아오길 기다려보겠습니다. 


"저 월급 이상 벌고 있어요!! 제가 한 턱 낼게요!"


그렇게 외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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