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교사 이야기 3
학교에 있을 때, 책을 출간하고 동화작가로 등단하고 강의도 나가니 주변 사람들이 그랬어요.
"선생님은 갓생을 사시는 군요."
책 쓸 시간이 언제 있냐는 질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그리고 보여준 몇 년간 쓴 노트 40권의 기록들.
그땐 갓생이라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제가 이만큼 노력했답니다 라며 스스로 뿌듯해했는데요.
갓생이 아니라 나를 너무 혹사시켰구나!
학교 일은 매해 하나에서 열까지 새롭고 다채롭기까지 하고, 매번 다른 소우주적 존재와의 만남들, 그리고 가끔 내 인생을 지겹지 않게 해 주겠다며 나타나는 교육 빌런들까지.
다이내믹한 교사 생활에 나가떨어져도 무방한 체력 소진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새벽 4시 기상을 달성했던 게 자기 혹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며 퇴직 후 스스로 내 무릎을 껴안고 토닥거리게 되었어요.
다만 이러한 내 연민의 서사를 들은 친구 왈 "네가 그렇게 살았으니깐 지금 밥벌이라도 하지!"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며 요즘은 딱 나에게 허락된 수면과 예전 루틴과의 잘 타협하여 새벽 5시 30분쯤 기상합니다.
너무 혹사했구나! 에 방점을 두니, 생활이 멜랑꼴리 하기도 하고 한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유혹이 많다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도 세상 볼거리는 넘쳤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볼거리였다면 지금은 시간을 탕진할 수 있는 게 널렸다는 거예요. 명퇴족에게 유튜브 등 영상 시청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뜨끔하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시각적인 매체에 아주 강렬하게 끌리는 저라는 걸 알기에 조심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숏츠를 볼 때마다 진짜 제 머리가 팝콘처럼 펑펑 터질 것 같다는 아찔한 상상에 죄책감마저 얹어지니까요.
매일 아침 다이어리에 <숏츠 시청 금지>를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 학교 밖을 나오고 싶다면, 먼저 시간을 장악할 수 있는 능력부터 체크해 보세요.
생각과 현실은 천지차이다. 노트 몇 권을 써대고 구상한 것들이 막상 현실이라는 무게를 만났을 때 한없이 찢기고 가볍다는 것을.
강의 콘텐츠가 자신 있으니 외부 강연자가 되면 대박이겠다 싶었는데 정작 제겐 콘텐츠는 있었으나 자기 홍보 능력이 부족했어요. 매번 어쩌다가 성사된 강의에는 "who are you?"라며 묻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책에서 강사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팔로우 늘리기를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팔로우 늘리기 빼고 다 하고 싶어지는 이 청개구리 심리를 우째할꼬 싶답니다.
'역시, 나한테 안 맞는 옷이었어.'
자조하지만 여전히 이 현실은 넘기가 힘드네요.
생각보다 현실은 복잡하고 요구사항이 많아요. 참 단순하게 2차원 평면 위에 모든 계획과 실행을 쏟아부으니까 뭔가 맞지 않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이것도 해 봐라. 저것도 해 보라며 좋은 자료도 주는데 제가 역부족이라는 걸 느껴요.
생각하다가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을 때 정작 발로 뛰고 손으로 꼼지락거려야 할 에너지가 없었어요. 그러니 가끔은 돌진형 스타일로 가 보세요.
"부딪히면 뭐라도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퇴직을 앞두고 생각이 많은 분들께 권해 드리는 단순처방전이지만 효과는 있습니다! 현실은 부딪혀야 비로소 내 현실이 된다는 걸. 아무리 글로, 책으로, 영상으로 만나도 그건 누군가의 현실일 뿐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