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연말의 시작
마음에 쏙 드는 곳으로 계약도 했겠다. 처음 구했던 전셋집 주인에게 계약만료 2개월 전에 이사를 해야 하므로 계약 만료 기간에 전세비용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돈이 없다고 집을 팔아야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제주도에서 농장 하신다고 들어서 부자인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첫 전셋집을 계약한 부동산에 내놓으려 했더니 거기 부동산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첫 전셋집 주인은 오히려 나에게 어떤 부동산에 내놓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두 번째 전셋집을 계약했던 부동산 사장님을 소개해 드렸다.
우리 집도 잘 찾아주신 것처럼, 이 집도 잘 팔아주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두 번째 전셋집을 계약했던 부동산 사장님은 정말 대단하게도 우리가 이사 가기 한 달 전 즈음 우리의 첫 전셋집을 천만 원에 팔아 내셨다. 사장님께서는 잘 아는 분이고 사업을 하는 분이라서 조금 저렴하게 팔았다는 말씀만 하셨다. 무언가 찜찜했지만, 부동산 전문가이시니 믿고 있었다. 새로운 전셋집으로 이사 가기 보름 전에 부동산 사장님을 찾아가 전세금은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 보았다. “전세금 이사 갈 때 주시는 거 맞죠?” 했더니, “네 집주인 주실 거예요.”라고 답하셨다. 걱정되는 마음에 집주인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주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이때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대처해야 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새로운 집주인이 보자고 하시네요!” 이사 가기 5일 전 부동산 사장님께 연락이 와서 부동산에 찾아갔다. 가서 새로운 집주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집주인이 두 번째 전셋집을 구하러 다닐 때 만났던 사장님 중 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모여 새로운 집주인이 대뜸 “10월 말에 이사 가시지만 전세금을 줄 수가 없습니다. 법인대출이 막혀있거든요. 그러니까 부족한 금액은 댁에서 알아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으실 수 있도록 아는 은행직원분을 연결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너무나 당당해서,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에요. 저희 집 전세자금을 돌려주시려면 사장님께서 어떻게든 대출받으셔서 돌려주셔야죠!”라고 말했지만 상대방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새로운 집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아내도 아내대로 사정을 했다. 그래서 겨우 이사 가기 전날에 사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돈을 돌려받는데 이렇게나 애걸복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새로운 집주인을 찾아가며 호소했던 것은, 내 삶에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점점 두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게 되었다. 이삿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집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남은 전세금을 다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집주인은 로봇 같은 말투에 로봇 같은 표정 하나도 흩트림 없는 모습과 표정, 말투까지 꼭 요즘 나오는 AI 로봇 같았다. 더 이상 감정에 호소할 수만은 없었다. “우리, 전세금을 돌려받겠다는 확약서를 써 보면 어떨까?” 아내의 말을 듣고 이사 당일 새로운 집주인과, 부동산 사장님, 나 그리고 아내 네 명이서 다 같이 만나서 확약서를 쓰기로 했다. 12월 1일까지 돈을 주겠다는 확약서를 받았다.
이사 당일, 첫 전셋집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니 가구들을 몇 개 남겨두어야 했다. 집에 짐을 모두 빼면 더 이상 내 집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사하며 버리려고 했던 침대프레임과 물건 몇 개를 두고 사진을 다 찍어둔 다음 도어록을 잠그고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고, 앞으로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끝나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1일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무렵 갑자기 새로운 집주인이 이의 제기를 했다. 말도 안 되고, 얼토당토않는 이의 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