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고향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인상 좋은 백인 남자가 찾아왔다.
SOFA에 의해 부부의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임을 눈썰미로 짐작했다.
여자는 이름과 말투에서부터 정체성의 향기가 났다.
여권을 보기 전까지는 국적에 대한 의문을 남겼지만,
미국인 남편 성, 한국식 투박한 이름의 부조화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가 동포의 체취를 풍겼다.
의뢰인과 책상에 마주하기 시작하면
추정과 감정은 사라지고 인적 사항을 시작으로
법의 언어로 들어간다.
사건 개요는 10여 년 전 0 법위반
징역 0년 집행유예 0년.
요구사항은 재외동포비자 F4 거소증 발급을 위한
사범 심사에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사범 심사를 위해서는 판결문을
관할 출입국사무소에 제출해야만 하는데,
경찰서와 법원, 검찰청을 여러 번 방문해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되면서도 전문가의 존재감은
일반인의 특이한 변수에서 생겨나기에
다른 방향과 특별한 경험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판결문을 찾아주었을 때 두 부부는
국적의 경계성을 닮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거소증(외국인 등록증)을 위한
첫 번째 고개를 넘은 기쁨.
사범 심사라는 더 높은 두 번째
고개를 넘어야 하는 부담.
대한민국 행정의 미비함에 대한 실망.
(사실, 미국이 더욱 심각하다)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법규 준수가 엄격히 요구된다.
불법행위로부터 경과된 세월과 반성의 태도,
재범 가능성 등을 판단하여
사범 심사 후 체류자격을 얻는다
.
두 부부에게는 먼저 F-4를 취득한 아들이 있고,
그는 한국에서 상당히 규모 있는 수제호프집을
운영하며, 한국인 여자와도 교제 중이었다.
두 번째 고개인 사범 심사를 넘기 위해
가족을 총동원했다.
미군인 남편과 아들 그리고 여자친구까지
‘WE ARE ONE”이 되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형식적인 탄원서가 되지 않도록 가족 모두
진심을 담은 글을 써오도록 했다.
글쓰기에 서툰 가족들 그리고 영어에 능숙 하지 않은 나.
진정성 있는 내용에 글과 언어의 장벽이 무너졌다.
그 뒤 켠에 숨겨져 있던 한 가정의 사랑과
대한민국을 향한 간절함이
국적과 문화를 초월하여 마음의 언어로 다가왔다.
그 마음의 언어를 그대로 번역해줘야만 한다.
그것은 타국의 언어지만 낯설지 않았고,
활짝 열린 머리와 마음이
가감 없이 필력을 발휘시켜 주었다.
반은 행정과 법의 언어,
다른 반은 마음의 언어로 문서를 완성했다.
온기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음을 확신했다.
그녀와 나는 심판대에 오른 심정으로
사범 심사에 임했다.
조사관이 서류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손끝, 호흡 그리고 눈빛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족집게 문제집으로 예습을 한 것처럼
조사관은 예상 질문을 해주었다.
진실이 해답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조사관은 그 자리에서 서약서를 받고,
‘허가’라는 명쾌한 판결을 해주었다.
국적을 상실하기 전 대한민국이라는
고국에 다시 서고 싶은 그녀의 간절함과
그 뿌리를 지켜주고자 노력한
한 가정의 사랑이 묻어났던 그 서류는
한 인간의 작은 역사서가 되었다
.
그녀는 연어처럼 처음 스며들었던
물의 흐름, 빛과 온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를 품었던 온기와 초유의 냄새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은
자신을 낳은 근원을 향하여 되돌아가게 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존재의 근원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다.
그녀는 미국이라는 바다로 이동할 때도
강물의 냄새와 자기장을 기억해 두어
대한민국으로 회귀하여 자녀에게
뿌리를 계승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며
무한한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강이라는 안전지대에 산란을 시작하는 연어처럼.
두 부부는 아들이 운영하는 수제호프집에 초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얼굴색과 언어처럼
다양한 맥주를 선택하여
“건배”. “TO US”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