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의 은방울
유효기간이 만료된 신용카드를 며칠째 보관 중이다.
카드에 새겨진 그 날짜를 꼭 붙잡아 두고 싶다.
가위로 잘라내어 휴지통에 버리는 행위,
그것은 마치 이별의 의식처럼 여겨진다.
체류 기간 만료가 다가오는 외국인 등록증,
항상 나를 긴장시키는 차가운 경계선이다.
무용한 플라스틱 카드로 전락하여,
가치는 휴지통에 들어가고 사람의 신분마저 빼앗아 간다.
마치 유효기간이 지난 신용카드처럼
그것은 존재성을 무효화 한다.
까만 머리, 까만 눈동자 그리고 까만 문신의 튀르키예 여인.
길 잃은 외로운 검은 고양이처럼
길고 까만 속눈썹을 유난히도 자주 깜박이고,
혀끝에 매달린 은방울로 슬픈 존재를 알리려는 듯
작은 떨림이 울려 퍼진다.
고양이 발톱보다 날카로운 그녀의 손끝에
외국인 등록증이 위태롭게 머물러 있었다.
출입국사무소, 경찰서, 검찰청, 그리고 법원
묵직한 이름이 새겨진 서류 더미는
전단지 뭉치처럼 뒤엉켜 있었고, 그녀의 히피 머리칼보다 더 어지러워 보였다
체류 기간이 이미 하루 지나버린 난민 체류자격(G-1).
문서의 글자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은 이미 그녀를 사무실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출입국사무소의 난민불인정 결정통지서 = 비자 연장은 불가.
법원의 행정소송 = 이미 의미 없다.
검찰청의 벌과금 납부 고지서 = 곧 출국 명령으로 이어진다.
내 뇌는 AI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하여 결론을 내렸다.
갑자기 그녀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옆에 앉은 대표가 과자 하나를 내밀었다.
혼란 속에서 영혼의 허기를 느꼈던 나도 커피 한잔을 들었다.
따뜻한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메마른 눈동자를 적시며 눈의 피로를 서서히 녹였다.
커피의 온기가 잠시 냉해졌던 심장을 감싸 안았다.
법원에서 받은 서류의 검은 활자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입국을 상대로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그녀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문서에 적힌 ‘폐문부재’ 사유를 물었다.
외부 업무로 응답할 수 없던 것이다.
한국어 미숙,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그녀는 변론의 기회를 잃었다.
비록 소송의 사유가 ‘이유없다’ 판단될지라도
권익구조의 문턱이 높아 실익이 없어 보일지라도
편견의 어두운 마음을 조금씩 몰아내었다.
그녀의 말속에서, 쏟아지는 정보들 사이로 희미한 빛줄기가 보였다.
그녀는 체류 만료일 당일, 출입국사무소를 찾아갔었다.
기일을 무단으로 넘긴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녀는 불법체류자가 아니다.
반송된 등기 속에는 언제나 차선의 권리구제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수동적 자세는 능동적으로
경계의 태세는 응원의 몸짓으로
소송의 영역은 다른 세상에 위임하도록 안내하고
기나긴 상담은 수임료 없이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피로감과 평온함이 조용히 교차하는 하루였다.
며칠 후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내에 따라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소장을 다시 작성했고,
비자도 연장되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날 이후, 나는 줄곧
검은 고양이의 슬픈 눈과 은방울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