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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의 끝에 선 그녀 2

로미오와 줄리엣

by 열음

체류의 끝에선 그녀 1


며칠 후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내에 따라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소장을

다시 작성했고,

비자도 연장되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날 이후, 나는 줄곧

검은 고양이의 슬픈 눈을 외면하지 못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비자 탐험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체류의 끝에선 그녀 2


그녀의 영화 같은 삶은

내 마음을 수임이라는 끈으로 구속했다.

희망 없는 시한부 체류 인생을 떠맡은 듯한 심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모든 관공서의 통지서는 허공에 부딪혀 메아리만

남긴 채,

그녀가 없는 주소지로 성실히 배송되었다.

관공서와 그녀는 대답 없는 서로를 탓하고 있었기에

그 오해를 풀어야 하는 일은 결국 내 몫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출입국사무소, 그리고 법원과 검찰청까지

나는 그녀의 주소를 하나씩 바로잡아 주었다.


그녀는 난민인정신청을 했었고,

불허 결정에 대한 불복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결정서와 이의신청서, 소장은

온전히 그녀의 자서전이었다.

관련 서류를 보고 나서야 그녀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금지된 사랑에 빠졌었다.

다른 종족의 남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종족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다.

인권 의식과 제도가 더 선진적인 대한민국 땅이

그들에게는 사랑을 이어주는

하나의 오작교와 같은 곳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깊은 신뢰였지만,

그들의 종족에게는 배신의 행위였다.

목숨을 걸어 지킨 그들의 사랑은

종교와 종족의 벽 앞에서 너무나 위태롭기만 했다.

그녀의 부모가 걸었던 비극의 길을 운명처럼

똑같이 걸으며

어머니는 눈물로 딸을 타국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희망을 안고 대한민국 땅에 발을 내디뎠지만,

그들에게 보장된 안전은 제한된 90일의 시간뿐이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로망이었고,

동시에 또 하나의 높은 벽이었다.


그들의 나라에서 사랑의 대가가 목숨이었다면,

이 땅에서 체류자격의 대가는

냉정한 법과 제도와의 싸움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지구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기에,

지구 안에 들어 올 자격을 엄격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사랑은 뜨거웠으나,

체류자격이라는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서기 전에

끝내 이루지 못하고 사랑이 무너져버렸다.


외로운 타국으로 오직 사랑 하나 믿고 건너온 그녀는

남편에게 싸움과 폭력을 당하여

결국 온전히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남은 건 혈연도 종족도 남편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지구의 땅 하나뿐이다.


그녀가 낯선 법과 제도와 마주하기에는

언어도 돈도

그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대한민국을 향한 간절한 마음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짧은 6개월 동안

잠시나마 섬광이라는 빛을 쬘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빛이 사라지면 다시 어둠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시한부 체류자격이다.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지구라는 단단한 울타리뿐이었다.

그녀는 안전한 이 땅에,

6개월만 더 머물게 해 달라며 답이 없는 문제지를

던져주었다.


나는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지를 받은 뒤부터

그녀에 대한 연민과 일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내비게이션 없는 미지의 비자 탐험에

대한 막막함이 내 안에서 뒤섞여 있다.




혼자가 된 그녀가

외로운 검은 고양이처럼 슬픈 눈빛으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찾아왔다.


차분해진 생머리로 변한 그녀에게 예뻐졌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마음도 언젠가는 그 머릿결처럼

차분히 안정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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