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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 이끄는 길 2

가족의 따뜻한 순간

by 열음

간절함이 이끄는 힘 1

업무를 하다 보면 알게 된다.

확신 속에서 변수가 발생하고,

불확신 속에서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늘 겸손함을 잃지 않고 초심이 제자리를 지키게 된다.


결국 내 생각을 아니, 이성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일단은 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운에 맡기면서,



간절함이 이끄는 힘 2

우리는 준비한 서류를 들고 출입국사무소로 향하였다.

얼굴은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만 뒤로 향하였다.

거울 속 의뢰인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낯설었다.

어머니의 따뜻함보다는

수험생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에 몰입해 있는 표정에서 강한 기운이 맴돌았고,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여 미간 주름을

더욱 깊이 패도록 했다.

무릎 위 꽉 쥔 주먹도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살려보려 살짝 말을 건네려다,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40 여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침묵에 점차 적응되어 갔다.


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능숙한 동작으로 빠르게 차 문을 열고

정문 쪽으로 앞장섰다.

차분함은 사라지고 급히 서두르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서류접수 직전, 완벽한 서류가 아니기에

거부당할 수 있다고 한 번 더 말해주어야 했다.

딸 본인이 미국에서 신청하면

간단하게 처리될 일이므로

상심하지 않도록 미리 위로도 해주었다.

그분의 간절한 마음이 깊이 전해질수록

나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투명한 칸막이 너머 있는 담당자가 유난히도

멀게 느껴졌다.

서류를 넘기는 그의 눈동자와 손끝을

세심히 보기에는 정서적 거리감이 있던 것이다.

담당자가 서류를 천천히 한 장씩 넘긴다.

꼼꼼한 성격 같았다.

의뢰인에게 가끔 질문을 던진다.

확실한 것을 물어 다행이었다.

드디어 여권과 시민권 사본을 주시한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

어느 누군가 튀어나와서,

주의를 산만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안도와 함께 검토가 빨리 끝나길 바랐다.


서류를 모두 넘긴 담당자는 접수를 마친 후.

이제는 우리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다음 번호표 버튼을 눌렀다.

그에게 또다시 불러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쏜살같이 나왔다.



우리 발자국의 박자는 일사불란했고 힘찼다.

현관 밖으로 완전히 나오기까지는 침묵했으며,

서로의 유쾌해진 발자국 소리에만 집중했다.

미국 현실을 고려한 일시적 지침 때문인지

새 담당자의 단순한 미숙 때문인지.

기도를 올린 신의 응답인지 알 수 없었다.

가뿐한 발걸음 속에서

생각의 나래가 나풀거렸지만,

기분 좋은 의문은 그냥 마음속 깊이 포개어 두기로 했다.

간절함이라는 윤활유가 발린 듯 자동차의 바퀴도

돌아오는 길에서는 더욱 매끄럽게 굴러갔다.


그분은 말문이 터져 엄마에게 응석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기도의 공을 쌓기 위해

아침 일찍 성당에 다녀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내내 꼿꼿하게 폈던 허리와 하얗게 질려있던 주먹은

이제는 편안한 휴식을 허락이라도 받은 듯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잠시 잠이 들었다.




그분은 점심을 꼭 사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작은 의식을 치르듯, 식사를 즐겁게 마친 후

다시 고요한 침묵 안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무실에 처음 왔을 때와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간절함에서 긴장감으로, 그리고 이제는

당당함으로...

눈빛은 늘 마음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분은 한국 남자와 이혼한 뒤 자녀 둘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70년대에 미싱 공장 일을 찾아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에 갔었다.

언어도 비자도 아무 준비 없이 초등학생인 두 아이만

데리고 가서,

불법체류라는 타국의 쓴맛을 겪은 후에야

현지 미국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엄마와 자녀 둘은 각자가 외로움과 편견 속에서

살아오며

서로에게 섭섭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는 딸에게 할 말이 생겼다고 했다.

힘들었던 미국 생활에서 치열하게 사는 동안,

“엄마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라며

가족관계 정리도 해놓지 않았다는 딸의 원망에 상심이 컸던 것 같았다.

깊은 속내가 입안에서 맴도는 것을 느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분은 두 달 후에 딸이 한국에 온다며 꼭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다는 딸.

타국에서 외로운 세월을 견딘 만큼,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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