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자주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납니다.
이유를 찾다가 오히려 더 지치게 되죠.
주변이 날 억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날 몰아붙이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은 꼬리잡기 게임을 시작하고
어둡고 깊은 세계까지 발을 들입니다...
워워! 그럴 때는 먼저 인정을 해아 합니다.
'아, 나 지쳤구나. 쉬어야겠다.'
인정하는 것부터가 첫 번째 단계예요.
그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두 번째. 머리를 비웁니다.
뇌를 잠시 일시정지 시키는 거죠.
가장 좋은 장치는 역시 시스템 오프, 잠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는 또 잠이 안 오지 않나요.
잠드는 것조차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 보루로 책을 집어듭니다.
소설은 패스.
너무 재밌어서 오히려 책에 빠져버리게 되니까요.
겨우 집어내는 건, 바로 시집입니다.
� 시? 나 시랑 안 친한데...
생각이 드셨다면 잘 걸리셨습니다.
효과는 보증된 거니까요.
저도 시와 그다지 친하지 않습니다.
표지가 예뻐, 제목에 맘을 뺏겨 사놓은 책만 수두룩 빽빽하죠.
맘 잡고 앉아 집중해보려 해도,
아리송한 문장들이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저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달까요.
시집은 왜 이리 읽기 힘들까, 생각해 보니까요
작품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 때와는 달라요.
꼭 시 한마디 안에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고,
그 의도를 꼭 파악하고 알아내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내 마음도 어려운데,
하물며 시인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래서 저는 시를 다르게 읽기로 했습니다.
시 안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면 그 구절만 취하고,
맘에 드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만 기억하는 거예요.
책에서도 126쪽이 아닌,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것처럼요.
이번에 교보생명에서 뽑은 최승자 시인의 시, <20년 후에, 지에게>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이 글귀는 광화문 전광판에 걸렸는데요,
삶에 지쳐 지나가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런 글귀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요?
좋은 문장, 좋은 순간은 수집하려고 눈에 불을 켜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은연히 찾게 될 때 감동은 배가 되고 내 가슴 깊이 세겨집니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나'도,
쌍심지 들고 대하다 보면 더욱 숨어버리게 되죠.
시를 대하는 마음으로 스리슬쩍 바라봐주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 나니까요.
나지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