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라 내 기억을 믿을 순 없지만 김장철이 되면 동네에서 다 함께 사용하던 디딜방아가에는 양동이 들고 줄 서서 대기해야 했었다.
그 외엔 그다지 분비지 않았기 때문에 쌀가루를 뿌울때나 고춧가루를 뿌을 때, 떡반죽을 해야 할 때면 엄마랑 둘이서 아니면 엄마랑 언니랑 셋이서 때로는 엄마랑 남동생이랑 셋이서 디딜방아에 가곤 했었다.
엄마랑 둘이 가면 언제나 엄마가 디딜방아를 밟았고 나는 쿵더쿵 절구통에 재료를 집어넣는 일을 했다.
셋이서 가면 엄마가 절구통에 재료를 집어넣는 일을 했고 둘이서는 디딜방아 한쪽 다리씩 맡아 밟기를 했다.
그런데 이 디딜방아를 탈없이 사용하려면 생각 없이 했다간 자잘한 사고가 나기 십상이었다.
방아 밟는 속도랑 재료 집어넣는 속도가 맞지 않으면 재료 집어넣는 손이 디딜방아 머리통에 찢어지고 디딜방아 밟을 때 두 다리발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디딜방아 머리통은 절구통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엉뚱한 곳을 쿵더덕거리며 바보짓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둘이 가면 별 탈 없이 재료를 빻아오는데 이상하게도 셋이 가면 엄마가 꼭 한두 번 손을 디딜방아 머리통에 부딪혀서 멍이 들기 일쑤였고 시간은 시간대로 오래 걸렸었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모를 고통이 있음을 나도 잘 알지만 하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결국 엄마의 고함소리에 정신 번쩍 들어 정신 차리고 긴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릴 적 디딜방아를 갈 때면 괜히 엄마가 일 시키려고 한다 싶어 퉁퉁거리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다.
굳이 데려가서 함께 하지 않아도 디딜방아집 아주머니를 불러 도와 달라고 하면 되는 것을 손도 멍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굳이 함께 데려갔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 이유란 것이 어렴풋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살면서 넋 놓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는 동안 정신 빠진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생활하는 동안 내 정신이 아닌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숨 쉬는 오늘도 나는 얼빠져서 멍하니 초점을 잃는데 그때마다 디딜방앗간에서 소리치던 엄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듣는다.
'정신 안 차리나! 정신 차리라!'
화들짝 놀라 주위를 가다듬고 날아가던 정신줄을 부여잡고 온 힘을 다해 온전하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애쓴다.
그래 사는 동안 힘에 부치는 힘겨움이 어디 내 생각으로 가늠이 되더냐 말이다.
언제나 삶의 힘겨움은 내 한계점을 넘어서고 그 한계점에서 몽롱해지려 하면 언제나 엄마는 그때처럼 내게 소리친다.
"정신 차려라!"
그 소리에 나는 다시 재정돈과 재정비를 하고 나의 임계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엄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