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러움의 대상

by 떰띵두

기억력의 손길이 닿는 처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 부러움의 대상은 뭐 이것저것 여럿 있었지만 그중 이것만큼 강력하게 내가 부러워했던 건 없었지 싶다.

하루를 마무리 지을 즈음엔 언제나 동네에는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이 집 저 집 부엌칸에서 맛있는 음식냄새가 풍겨 나왔다.

이제 노는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야겠구나 할 때면 영락없이 이 집 저 집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개똥아~ 밥 묵어라!'

'순이야! 밥묵자'

'열아! 밥 됐다.'...

그렇게 집집이 불러 댈라치면 온 동네에 확성기를 켜둔 듯 한동안 시끄러웠다.

함께 뒤웅박 치며 놀던 우리는 서둘러 후다닥 집으로 쫓아 들어가기 일 쑤였지만 나는 가끔 아주 가끔은 엄마가 목이 터져라 불러도 그것을 외면하고 앞집 순이네 집으로 가곤 했었다.

밥을 먹으러 순이네 집을 간 건 아니지만 한 번씩은 앞집아주머니였던 순이 엄마는 밥을 함께 먹고 가라고 하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의 목적은 결코 저녁밥을 얻어먹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목적은 바로 누룽지였다.

앞집이었던 순이네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그 덕에 저녁밥을 하고 밥을 푸고 나면 반드시 가마솥 밑바닥엔 가마솥 누룽지가 생기는데 아줌마는 대부분 이걸 긁어내지 않고 물을 부어 숭늉밥을 짓기 일쑤였다.

그러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목적 달성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매일 저녁마다 들릴 수도 없는 일이라 목적 달성을 이루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참 난감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누룽지를 긁어먹는 것보단 숭늉밥을 하면 더 푸짐하게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도대체 어느 세월을 살았음에 먹는 것에 그리 민감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내 어릴 적은 그러했다. 한 번씩은 친구들과 구슬치기며 엿치기를 하고 놀다가도 길가 풀숲에서 새피라고 하는 풀을 뽑아 먹고 놀았고, 찔레나무의 여린 줄기를 꺾어 먹고 칡뿌리를 파먹고 놀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 단 한 번도 가난으로 불행이란 걸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냥 좋았고 그냥 행복했다.

나는 내가 참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나는 참 운 좋은 행운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다.

그런 운 좋은 행운아였던 내가 때를 맞춘 운수 좋은 날이면 그 목적을 이루기 딱 좋은 순간에 부엌문 앞 가마솥이 빤히 쳐다보이는 부엌문 앞에 서서는 앞집아주머니를 쳐다보고 가만히 서 있으면 모른척하기 쉽지 않았던 덕에 세 번에 한번 정도는 아주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물어오신다.

누룽지 좀 긁어 줄까?

그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대답한다.

"예 많이 주세요"

쇠주걱으로 가마솥 밑바닥을 삭삭 긁어도 내 조막만 한 손 한아귀를 채우지 못하는 양이었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은 그런 운수 좋았던 날들 중 어느 한 날은 가마솥 누룽지가 의도치 않게 가마솥 밑바닥 모양대로 훅 들고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완전 운수대통하는 날이었던 거다.

가마솥 모양채 일어난 누룽지를 이미 내가 보았음에 그것을 다시 가마솥 안에 담아 넣을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그 커다란 누룽지를 가져 나와 순이랑 내 동생이랑 분질러 나눠 먹었던 기억이다.

이날 우리는 그 귀하디 귀한 가마솥누룽지를 아끼지 않고 그냥 막 먹었지 싶다.

이처럼 내 인생 최고의 부러움이었던 가마솥누룽지를 손에 쥘 때면 세상을 다 얻는 기분이랄까

손에 쥔 누룽지는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른듯하지만 따스한 김이 포슬포슬 날리고 아주 얇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제 모습을 지키려 뿔을 세운 듯 딱딱한, 입안에선 뽀드득 바사삭 거리는 그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이었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때 가마솥 누룽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순이네 집이 너무 부럽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연탄불에 곤로였었기에 도무지 그 가마솥 누룽지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음에 나는 나름 앞집 아주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고 또 한편으론 나도 여기 이 가마솥밥의 가마솥 누룽지만큼은 좀 얻어먹어도 된다는 정당한 이유를 나름 만들기 위해 앞집오빠야랑 순이가 산에 나무를 지러 가거나 갈비를 끍으러 갈 때면 함께 따라가 갈비 한 짐 나무 한 짐씩을 함께 지고 나르기를 나름 열심히 했었다.

그러하기에 그땐 참 당당했었는데 앞집 아주머니는 나의 당당함의 이유를 아셨을까?

한 번씩 앞집 아주머니가 긁어주시던 그 가마솥누룽지가 나의 부러움을 가득 메워주었기 때문일까?

나는 사는 동안 나의 삶이 참 풍요롭다 여기며 살았다.

아무튼 이것만큼 살면서 강렬하게 부러움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때의 가마솥 누룽지는 지금도 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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