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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 모의

by 떰띵두

나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이 친구는 참 순하다.

지금까지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우리 둘은 나름 같은 시절 같은 공감으로 살았지 싶다.

우리 둘은 나름 함께 한 시간이 그래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 깊다.

나는 동생에겐 설명하기 쉽지 않은 애틋함이 있다.

동생은 나와 비슷한 기분으로 살았을 거란 동지의식 같은 것도 있다.

함께 나누고 공유한 기억들은 제각각 일 수 있어도 나에게는 동생과 편먹기에 집중했던 일들 중 지금도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 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쯤이고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지 싶다.

우리는 학교 등교를 참 빨리도 했다.

아마 우리는 늦어도 7시 전에는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었었다.

무슨 일로 그리도 일찍 학교엘 갔는지 모르겠다.

그냥 더듬어 보건대 엄마 아빠 일찍 일하러 가셨고 언니 오빠들도 시내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 첫차를 타고 등교를 해야 했고 아마도 집에는 아무도 없고 그러하니 우리 둘은 일찌감치 학교에 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운동장에다 나무막대기로 그림을 그리고 운동장을 삥 둘러 서 있던 향나무를 서로 앞질러 나무둥지를 껴안으며 서로 자기 거라 찜하기도 하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돌덩이에 올라앉아 기억에도 없는 수다를 피우기도 하고 느티나무옆 철봉에 매달려 오래 버티기를 하고 철봉아래 모래밭에서 흙장난해가며 놀다 친구들이 우르르 학교 교문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동생과 나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교실로 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정문 앞 문방구 가게문 옆에 이상하게 생긴 기계가 하나 생겼다.

며칠을 동생이랑 나는 그 기계가 뭔지 살폈었다.

학교를 마치고도 곧장 집에 가지 않고 멀찌감치에서 그 기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가끔 어른들이 그 기계 앞에 서서는 뭘 꺼내 마시곤 했다.

참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기계인지 말이다.

그 기계의 이름은 '커피 자판기'

기계 앞 면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알아냈지만 도대체 커피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살피다 동생과 나는 작당모의를 했다.

우리도 저 기계에서 저 것을 한번 꺼내 먹어 보기로 말이다.

근데 돈이 필요했다.

동생과 나는 번갈아가며 엄마를 졸라댔고 그러다 드디어 우리는 이른 아침 등굣길에 심장이 쿵쾅쾅거리는 순간을 맞았다.

커피자판기 앞에 선 우리는 너무 떨렸다.

근데 더 놀라운 건 그 자판기에 적혀 있던 것들 중에 우리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블랙커피' '슈가커피' '밀크커피''율무'

도대체가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벼르고 벼룬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적혀 있던 이것들 중에 무얼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고민했고 드디어 결정을 했다.

첫 번째로 적혀 있는 '블랙커피'를 말이다.

어렵게 얻어낸 돈을 용감하게 동전구에 집어넣고 우리가 결정한 버턴을 눌렀다.

"윙~잉~윙~~'

소리가 끝나고 컵을 꺼내는데 뜨거웠다.

조심스레 꺼내 들고 잔에 담긴 걸 보니 김이 폴폴

손이 데일만큼 뜨거운 시커먼 물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종이잔을 들고 학교운동장 느티나무 아래 돌덩어리 위에 앉았고 서로 번갈아가며 호호 거리며 시커먼 물을 식혔다.

손에 뜨거운 기운이 가시고 우리는 한 모금씩 먹어보기로 했다.

너무너무 떨렸다. 심장이 쫄깃쫄깃한 기분이었다.

겁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먹어보기로 작정했고 어렵게 이것을 손에 쥐었기에 누나인 내가 먼저 한모금하기로 순서를 정했다.

드디어 한 모금

"으윽, 쾍, 퇘."

동생은 눈이 똥그레져서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동생에게 말하길 "이상해. 약인가 바."

동생은 지레 겁먹고 혀만 살짝 대보고선 놀라 뒤로 나자빠진다.

우리는 둘이 눈만 말똥말똥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

이걸 어떻게 하나.

엄마에게 받아 온 돈이 아까워서 이 미치도록 독한 것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저히 먹을 수도 없고 갑자기 너무 속상했다. 화가 났다.

한 참을 멀뚱 거리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갔다 오기로 했다.

도무지 아까와서 버릴 수 없어 나중에 학교 다녀와서 몰래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집 장독대 뚜껑밑에 몰래 숨겨두고 오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우리는 동네 어른들에게 들킬까 조심조심해서 집에 도착했고 단지뚜껑 밑에다 블랙커피를 숨겨두고는 둘이서 헐레벌떡 뛰었지만 그날은 다른 친구들보다 등교가 조금 늦었지 싶다.

그리고 동생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교실 책상에 앉아서도 내내 속상했고 억울했고 화가 났고 돈이 너무 아까왔다.

나는 모르는게 참으로 많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의기소침해졌지만 그래도 그 쓰디쓴 블랙커피를 보약 먹듯 며칠 동안 조금씩 조금씩 결국엔 다 먹어 치우면서 나의 무지함에 처져있던 어깨뽕을 스스로 추켜세웠다.

이런 나를 동생은 아마 존경스러워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사건 이후 동생은 나와 의기투합하는 일에 마다하는 것이 없었음이다.

쓰다.

참 쓰다하던 이것을.

인생의 쓴맛을 본 덕분인가 이제는 이 맛에 중독되어 매일 아침 시커먼 물을 들이켜고 산다.

나의 사랑하는 동생아!

쓰디쓴 굿모닝 블랙커피 한잔 함께 할 작당 모의를 우리 다시 한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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