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면 호구되는 세상 아니었어?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울고 싶다고 아무데서나 울고 다니면 바보되는 세상이다. 싸이월드에서 눈물 한번 잘못 흘렸던 채연이 얼마나 오랜 기간 흑역사에 시달렸는지 보라. 물론 요즘엔 해당 짤이 밈화되어 전화위복의 계기로 잘 삼은 것 같긴 하다만, 사실은 패션처럼 눈물에도 TPO가 다 있었던 것...!
난 ㄱㅏ끔... ㄷㅏ정함을 흘린ㄷㅏ... 맘껏 ㄷㅏ정할 수 있다는 건.... 좋은ㄱㅓㅇㅑ...
그러면 아무데서나 다정함을 흘리고 다녀도 정녕 괜찮은 세상인걸까?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착하면 바보되는 세상이라고 가르쳐왔다. 친구(바깥 사람) 너무 좋아하지마라, 결국에 가족 말고는 다 멀어지니 잘해줄 필요 없다, 손해보고 살지 말아라, 이런 말들은 내게 너무 익숙한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모두 무!시!하!고! 친구(바깥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러한 성격으로 자라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무작정 다정하면 잡아먹힌다는 것이었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더니, 어느새 나의 다정함과 호의를 당연시 여기고 자기 편리를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나의 다정함을 되갚아 주는 백 명의 사람이 있더라도, 나의 다정함을 착취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얻는 상처가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순진하고 다정한 사람에게 때때로 가혹하다. 정말 다정하고 싶다면, 뒷짐에 우리는 영악함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착취적이고 영악한 사람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의 진화론은 어쩌면 좀 동화적인 것은 아닐까. 동물들의 자기가축화를 통한 생존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인간 만한 영악함이 없지 않은가. 여우와 보노보는 호의를 통해 더 나은 생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지만, 인간은 더 나아가 그 호의를 착취하여 쉽게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배웠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의 진화론, 그것은 상호성이 전제되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인간 사회에 모두가 다정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다정함이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일론 머스크나 베이조스 또는 스티브잡스, 이 사람들은 직원들을 광적으로 착취했기로 유명한 사람들이고, 자본주의 체제를 120% 활용하여 이들은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었다. 세상의 권좌는 어쩌면 (자본이라는 거대한 방패를 가진)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기울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혐오지양 측면에서 취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책이었다. 사상 활동에 있어서 비폭력 운동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부분도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을 정도였고, 인종간 편견을 허물고 교류할 수 있게끔 만드는 직소 클래스룸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작은 아이디어의 위대하고 선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종간, 그리고 성소수자간 자연스러운 교류를 미디어에 자주 노출시키면 서로에 대한 호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부분도 희망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예술계에 활발히 반영되는 정치적 올바름도 지지할 수 있었다. (힘든 싸움을 하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솔직히 나는 남을 돕고 싶거든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능력의 도착점이 어디이며 남을 돕는 시작점이 어딘지를 묻는다면 명확히 제시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세상은 무작정 다정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정하되, 너가 나를 물면 너도 똑같이 피곤해질거야- 라는 점은 이빨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