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처절하게
울부짖던 그날,
아빠로서 냉철해야만 했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물리적 평정심이 찾아들었다.
또래 여학생들에게
상습적인 괴롬힘과 폭력을 당한
딸을 다독거렸다.
딸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을 때,
지금부턴 아빠가 해결하겠노라고
딸애에게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누구한테 각각 어떻게 당했는지
있는 그대로 써라고 했다.
딸은 빨간펜을 집어 들었다.
왜 검은 펜이 아니냐 물었더니
걔들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그냥 빨간펜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럼 쓰라고 했다.
딸애는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데
머리채를 잡힌 일,
체육시간 스포츠 장비로
어깨를 두들겨 맞은 일,
육두문자가 섞인 욕설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일,
생식기를 무릎으로 차여
아파했던 일 등을 쓰고 또 썼다.
보고 있는 내내
억장이 무너졌다.
폭행과 폭언의 포화 속에
혼자라는 수적 열세,
그리고 성격상 주눅이 든 채
걔들한테 항거치 못하니
심신이 찢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거다.
아이를 다시 보듬고
쓰다듬어 위로했다.
다음날 오전,
혈서 같은 딸아이의
피해 진술서를 들고
학교로 갔다.
이미 문자로
학폭 사실을 알린 터라 그런지
딸은 수업에 빠진 채
상담실 같은 곳에 따로 앉아
피해 진술서를 꾸역꾸역 또 쓰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이었는데
나를 보고서야
조금 괜찮아지는 듯 보였다.
아빠 왔으니 걱정마라 했다.
다 괜찮다 했다.
나는 학폭 담당 교사와 인성부장,
담임교사를 차례로 만났다.
1년 가까이 참고 참았던
그간 생각들을 털어놨다.
교사들도 약간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런저런 학폭 신고 절차를 설명하기에
나는 매뉴얼대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이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등 심리 상태를
'보호자 의견서'에 써 내려갔다.
학교에 못 다니겠다,
대안학교 가면 좋겠다,
그 친구들이 두렵고 무섭다 하는
딸아이의 호소를 대신 담았다.
나는 요구했다.
드러나지 않은
다른 학생들의 추가적인 피해와
가해도 있을 수 있으니
전수 설문조사를 해달라 했다.
공교롭게도 이 학교는 얼마 전,
전국적인 이슈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딸아이와 같은 1학년,
몽골 출신 여중생 이야기다.
다른 학교 또래들로부터
손과 다리를 묶인 채 뺨을 맞는 집단폭행과
동영상 유출이 있었던 사건.
그래서 학교 측과 교육당국의
부실한 학생 관리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