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빨간 글씨' 그 이후,
경기도 어느 땅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친구가
딸을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고향 땅에 내려가는 일정이 있으니
서로 시간을 맞춰 보자는 거였다.
딸아이는 지금 학교엔 더 이상 다니기 싫다며
시시때때로 울며 불며 난리였던 터였다.
대안학교에 보내주면 안 되냐
본인 스스로 말을 꺼내곤 했으니
친구를 만나게 하는 게
어쩌면 이 사태의 해법을 찾는
지름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일정을 조율해
고향 바다 곁,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친구는 딸애를 두세 살 때 처음 봤으니
다시 보는 건, 근 10년 만이었다.
친구는 딸애를 보자마자
꼬옥 안아주었다.
둘만의 대화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그날, 친구와 딸애는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며칠 후,
그 친구와 다시 통화가 됐다.
친구는 그때 딸애와 한 이야기를
차분히 말해주며
"아빠가 더 따뜻해져야 되겠더라." 했다.
학폭 피해를 입은 딸이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철저히 소외당하는 느낌을 보이고 있으니
지금은 다른 말 말고
그저 보듬어주고 많이 들어주고
따로 여행도 가는 게 좋겠다고 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기도로 돕겠다고도 했다.
나 자신을 냉철히 돌아보았다.
딱딱한 말투, 비판적 사고방식 등
그간 몸에 밴 직업적 언사에 매몰돼
집에서 결코 자상하지 못하고
따뜻하지 않은,
부족하기만 한
아빠의 모습으로 대한 것 같았다.
몹시 부끄럽고 죄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