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
가끔은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주변에서 아무리 다정한 말을 건네고 마음을 보여줘도 그 온기가 쉽게 와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생긴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혼자인 걸까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이 조용히 닿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쩌고 매거진의 에디터들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에디터들은 언제 사랑을 느끼고, 언제 누군가와 함께라는 감각을 느낄까요?
순수
아직 본가에서 살고 있는 저는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종종 휩싸이곤 하는데요. 성인 가족들은 모두 일을 하지만 아직 10대인 동생들이 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시간 되는 사람이 밥을 챙겨주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만 먹고 싶은데, 내가 (일)하고 싶지 않은 시간에(이제야 좀 쉴까 하는 시간에) 왜 시간 맞춰 애들 밥을 줘야 하지… 하는 생각은 저를 점점 더 독립하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일들이죠. 밥을 안 챙겨주려니 매일 불닭볶음면만 먹으려고 하니 환장할 일입니다~.
여하튼 이런 집에 며칠 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엄마가 코스트코에서 장을 봤는데 너무 무거워서 같이 들고 올라가 주면 좋겠다고 하여 1층에 내려갔다가 깜짝 놀란 일입니다. 30만 원어치의 장을 봤더라고요. 정말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30만 원… 대가족인 가정에서는 크게 놀랄 금액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구매 리스트를 보면 … 죄다!!!! 제 동생들이 혹은 제가 좋아하는 유제품, 고기 등의 생필품 혹은 요리를 위한 재료가 아닌 정말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사서 오셨더라고요. 그러면서 행복한 얼굴로 너 주려고 샀어, 하며 이것저것을 꺼내 보여주는데, 참 이게.. 이게 부모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은 먹지도 않는 것들을 타인을 위해 사주려고 하는 것.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제가 식혜를 먹고 싶다고 했었는데 식혜도 한 상자를 사 오셨더군요.
모든 부모들이 모든 사랑과 희생을 자식에게 쏟으며 살진 않을 테고, 때문에 어떤 부모가 옳고 그르다,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 새삼 사랑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먼지
제 생각에 저는 정말 사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엄마에게요. 엄마는 저에게 정말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여도 항상 데려다주고,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면 바로 데리러 오는 저만의 5분 대기조 같았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기숙사 입/퇴소마다 짐을 가지러 오시고 가끔은 서울에 데려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냉큼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데려다주고 바로 다시 혼자 돌아가는 엄마를 생각해 보니 이제는 냉큼 데려다 달라고 할 수만은 없더라고요. 자취를 시작한 이후에는 엄마가 기숙사 때문에 서울에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굶을까 걱정되셔서 본가에 갈 때마다 음식을 새로 해주시고, 자취방까지 들고 가기 무거울까 데려다주겠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 사실 서울까지 왕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서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자취를 시작한 이후에 오히려 서울에 더 많이 오시는 것 같네요..
친구들과 얘기해 봐도 다들 제가 엄청나게 사랑받고 있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과분하고 넘치는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구재
저는 안 유명한 동생 러버입니다. SNS를 보면 현실 자매 콘텐츠는 대부분 동생과 싸우거나 동생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동생이 싫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동생은 늘 저에게 조금 냉랭했습니다.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항상 제가 더 많이 좋아한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이해합니다. 저는 흔히 말하는 사춘기라는 시기가 거의 없었지만 동생은 아니었거든요. 성향도 꽤 다릅니다. 저는 밝은 편이고 동생은 조금 시니컬한 편이라, 겉으로 드러나는 애정 표현은 제가 더 많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최근 들어 동생도 저를 사랑하는구나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엄마의 제보가 있었어요. 제가 서울과 본가를 오가며 생활하는데, 제가 집에 없을 때와 있을 때 동생의 컨디션이 꽤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집에 있으면 훨씬 말이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진다고요. 다만 문제는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동생이 “흥, 아니거든.” 하고 부정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둘 중 누구 말이 진짜인지 늘 애매했죠. 그러다 며칠 전, 동생이 아침에 울상인 얼굴로 제 방에 왔습니다. 꿈을 꿨다면서요. 꿈에서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말하자, 동생이 엉엉 울면서 저를 붙잡고 “나랑 놀아야지, 어디 가.”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동생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온 저의 짝사랑이 사실은 쌍방이었다고 확인받는 기분이었달까요.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동생이 저에게 표현을 조금 더 자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 우리가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요즘은 괜히 마음이 조금 오묘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오늘 하루 주변을 한 번 천천히 살펴보세요. 어쩌면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너무 익숙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랑이, 사실은 가장 큰 마음을 건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