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라랄라
20대 후반에 중국의 국제유치원에서 한국부 원장으로 일했다. 아이들은 만 2세부터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배우며 매년 3개 국어로 공연했다. 졸업 후 자연스럽게 국제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방학이면 중국 오지로 여행을 떠났었다. 동양인은 거의 없었고 게스트하우스에서는 19~20대 초반의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몇 주가 아닌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여행을 하고 있었다. “너네 학교는?” 하고 물었던 그날. 그들은 오히려 되물었다. "어떻게 진로를 벌써 정해?" 한국에서는 재수를 한다는 건 1년 뒤처지는 느낌이었다면 그들은 자신만의 속도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아이만큼은 ‘난 뭘 좋아하지? 난 뭘 잘하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직접 부딪혀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랐다.
그때부터였다.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아이를 낳을지도 모르던 시절, ‘내 아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야지’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특히 영유아 시절에는 더 많이 뛰어놀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어른들의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실컷 즐기고 실패도 경험하길 바랐다. 주어진 틀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아이로 자라기를.
그 후 하람을 만나 결혼했다. 하람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뭔지도 몰랐지만 “밥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내 의견을 따라줬다. 나는 그런 하람이 지금도 참 고맙다. 아마 지금의 하람도 공동육아의 가치를 경험하며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
수많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중에서 ‘덩더쿵’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반일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을 최대한 오래 확보하고 싶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도 많지만 이 시간이 소중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공동육아를 단순한 교육 방식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협력하며 성장하고, 경쟁이 아닌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질문을 던지고 길을 개척하는 힘을 키우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덩더쿵을 선택했다. 아이가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아이가 ‘이 길이 맞을까?’ 고민할 때,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by 라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