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다시 한여름의 이웃이 지척에 집단 이주해 왔다.
집 옆 대나무숲과 솔숲 속으로 한 무리의 백로가 계절을 한 바퀴 돌고 와서 터를 잡은 지 한 달쯤 지났다. 처음 이 마을에 발 디뎠을 때, 제법 기다란 농로 양옆의 논밭에서 백로 무리가 노니는 모습이 무척 고즈넉하고 평온했다. ‘그래,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매일 마주하면 세상 부러울 게 뭐가 있겠어!’ 아직 이슬을 머금은 이른 아침, 초록이 짙어가는 숲을 배경 삼아 막 모내기가 끝난 연둣빛 논 위를 희디흰 백로들이 날아오르면,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뚝방길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백로의 비행 궤적을 눈으로 좇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방문자, 손님 혹은 여행자 시점이다.
거주자, 주민 입장에서 보자면, 막 모내기가 끝난 논 위에 한 무리의 백로가 우르르 내려앉는 순간, “훠워~~~이!! 훠어~! 훠어~이!” 농사짓는 어르신은 백로를 쫓기 바쁘다.
백로가 우리 마을 숲에 자리 잡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안전하게 몸을 숨기기 좋은 숲 바로 앞에 물과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논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논은 거의 뷔페급 식단을 자랑한다. 다양한 종류의 개구리, 올챙이와 어린 뱀, 친환경 농법으로 방생한 우렁이까지 백로의 먹잇감이 된다.
문제는 어딘가에서 겨울을 지낸 백로 떼가 돌아와 터를 잡는 시점이 하필 모내기할 때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어린 모가 백로에게 밟혀 여기저기 쓰러지고 꺾여 버린다. 전체 논에서 쓰러지고 꺾인 모의 비율은 미미하겠지만, 그 작은 모 하나하나가 어르신이 흘린 땀의 결실이 될 것이기에 마음마저 홱 꺾여버린 듯하다.
그래도 마을 길을 자주 오가며 백로 서식지 가까이 살아서, 쫓자면 쫓을 수도 있는데 그게 참 애매하다. 저들도 자연의 일부인데 논 위에 앉는 걸 쫓아내면 백로도 한 끼를 굶어야 하는 건 둘째치고, 아무리 쫓는다 한들 24시간 붙어 앉아있을 수 없으니 어차피 사람이 없을 때 다시 돌아와 만찬을 즐길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소중한 모가 자빠져 안타깝고, 생태계 한가운데에 살다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사람의 일도 참 백로 같다. 누구에겐 정말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존재라 늘 곁에 두고 싶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피해만 끼치며 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백로(百怒)하게 만드는 존재. 결국은 더불어 살아야 할 서로이며 그 접점을 찾는 일도 모두 같이 해야 할 일인데,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함께 왁자지껄 어울려 지내는 모습보다, 있는 듯 없는 듯,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는 평온한 모습을 그려본다.
▶ 목줄을 풀어주면 다 해결해줄게. 절대 도망가려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