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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25.좋아서 하는 일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견주고 재며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마음을 조절하기란 언제나 쉽지 않다.


남해로 귀촌한 후 작은 공간을 꾸렸다. 비록 오래된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한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직접 다듬고 손 본 장소에서 꿈꿔 오던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인테리어, 간판, 크고 작은 소품부터 수건, 휴지 하나까지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가게에 담긴 애정도 오죽했을까 싶다. 매일매일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기다 보면 혼자 뿌듯함이 벅차올랐다. 마당이나 옥상에서 눈만 돌리면 초록 들판이 펼쳐진 시골의 일상이 믿기 힘들었다. 마치 시공간을 벗어난 듯 여태 살아오던 현실과 동떨어진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시간이 흐르며 귀농 귀촌을 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도 많아졌다. 지역신문에 실린 낯선 귀촌인의 인터뷰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유~~ 큰 욕심 없어요, 그냥 소소하게 일하면서 먹고 살 만큼만 벌면 되죠”라는 말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귀촌인의 모범답안 같았다. 성별, 나이, 외모, 직업, 환경 등 같은 것 하나 없지만, 시골에 내려와 살면 한 번쯤 내뱉게 되는 그런 말이랄까.


그래서 대체, 그 ‘먹고 살 만큼’이 얼마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은 잠시 제쳐두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많든 적든 가진 형편에 맞춰 적당한 공간을 꾸려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소박하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운가! 하지만 그 모범답안은 어디로 흐를지 모르고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대서사극의 갈등과 복선을 담은 오프닝 멘트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은 생각보다 굉장히 적응이 빠른 동물임을 새삼 느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겠지. 언젠가부터 현실감각이 극에 이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설레던 하루는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이 되었으며, 풋풋하고 새롭던 신선함은 마비된 듯 잘 느껴지지 않았다. 소박하고 낭만을 좇던 마음은 세월에 바래듯 점차 희미해졌다. 시골에서 직접 땀 흘려 가꾼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공간,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지가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깊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남과의 비교’ 때문이었다.


낯선 시골 환경에 익숙해지고 일상에 무료함이 조금씩 깃들자, 같이 어울릴 사람을 찾아 나섰다. 다양한 종류의 SNS가 워낙 활발하게 작동하니 비슷한 또래, 동종업계, 혹은 결이 맞아 보이는 사람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워낙 드문 시골이라 원하든 원치 않든, 알려고 하지 않아도 대부분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알아가며, 이 집 저 집 놀러 다니며 자주 어울리는 무리도 생겨났다. 그러던 중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비교의 씨앗’이 심어져 버린 거다.


견주고 재어보는 싹이 돋아났고,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하기 시작하며,

그 차이로 인한 손님의 반응을 살피게 됐다.


‘우리 집에도 멋진 가구를 들여놓고 싶어.’

‘이런 공간이 있으면 훨씬 더 좋겠구나.’

‘와-! 얼른 돈 모아서 저런 근사한 아이템도 장착해야지!’


머무는 공간이 곧 생계유지 수단인 영업장이기에 엄습해 온 불안감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은 더는 즐거움이 아니라 서서히 돈으로 변해갔다. 물질적 대가에 마음과 시선이 쏠렸다. 낯설지만 신선하며 가진 형편에 만족하던, 소박하고 낭만적이기까지 했던 일상의 향기는 물질과 돈 냄새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여름 성수기도 끝나고 비수기로 접어든 어느 초가을 밤, 옥상의 해먹에 누워 밤하늘 별빛을 바라보며 비수기를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하던 중에 문득 깨달았다.


‘아…!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구나….’


그리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흐트러진 마음을 겨우 다잡고, 귀촌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조용한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삶’을 향해 다시 방향을 고쳐잡아 작은 행복을 찾으려 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마음마저 놓쳐버렸다면 이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었겠지. 또 다른 어딘가를 미지의 이상향인 마냥 찾아 헤맸겠지. 물질과 돈을 좇으며 얻게 되는 즐거움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는 건 이미 오랜 직장생활에서 경험한 만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며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돼서 다행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좀 더 깊게 들여다보려 한다. 그렇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늘 소외당하며 후순위로 밀려있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 끼니마다 밥 잘 먹고, 이 한 몸 뉠 곳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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