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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27.간절기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온도계에서 빠져나간 숫자가 시계에 더해지는 것만 같다. 붉게 물든 하늘과 바싹 마른 나무 잎사귀는 찰나의 붉음을 뒤로 한 채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한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다시 겨울에서 봄. 그렇게 네 번의 간절기를 맞는다. 각각의 계절은 저마다 절정을 뽐내면, 다음 무대를 위해 잠깐의 휴식과 준비를 겸하는 인터미션 같은 시간을 갖는다. 이때는 여행자도 눈에 띄게 줄어 가게에도 여유가 찾아온다. 그렇다 해도 뒤를 이을 계절에 찾아 주실 손님을 위해 마냥 놀거나 쉬면서 보낼 수는 없다. 바쁜 시기에 손보지 못했던 구석구석도 보수해야 하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장식이나 비품, 냉난방 설비 점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많은 탓이다.


시골의 들에도 간절기 풍경은 매한가지다. 가을 작물의 수확이 끝나면 비료와 퇴비가 한가득 뿌려진다. 곱게 일궈져 영양분을 잔뜩 머금고 한숨 돌리며, 겨울나기 작물을 위한 준비 시간을 갖는다. 시금치, 마늘, 겨울초 같은 엄동설한의 서리를 견뎌야 제맛이 오르는 농작물이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닥치기 전에 하나둘 뿌리를 내리는 시기다. 산천초목도 봄이면 여기저기 꽃을 피우고, 꽃이 질 무렵 잠시 한숨 돌린 후 영롱한 잎이 돋아나며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였다가, 찬란한 단풍을 뽐내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저마다 쉬는 시간을 갖는다.


산과 들도 그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사람에게도 간절기가 찾아온다. 지금 하는 일을 본의든 타의든 잠시 그만둬야 할 때도 있고, 아예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시기도 찾아온다. 건강상의 이유든, 수익에 대한 갈등이든, 예상과 판이한 업무환경 때문이든, 구조조정에 의한 감원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유독 불안감과 초조함에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가고,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며 일해도 일하는 것이 아닌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닥치면 너무 초조해하고 조바심내며 애를 태운다. 지금 잠깐 쉬어가면 마치 큰일 나거나, 영영 뒤처져 다시는 일을 할 수 없을 듯이 좌불안석이다. 여유를 갖지 못하는 마음이 어쩌면 평범한 태도라 쉽지 않겠지만 생각을 바꿔보려 한다. 지치고 힘겨운 과정을 지나온 쉼의 시간이고, 다시 열정을 쏟아 내며 절정을 맛보기 위해 양분을 모으는 시기라고. 새 살이 돋아 회복하듯 지난 시간에 입었던 상처도 치료하며 건강한 모습을 다시 찾는 시기라고.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할뿐더러 쉬지도 못한 밭에 아무리 땀 흘리며 애써서 새로운 작물을 심는다 한들, 수확할 때가 되면 그 결실이 결코 풍요롭지 못함을 깨닫는다. 잠시 쉬는 것은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시간이다. 고갈된 양분도 채우고 비타민도 먹으며 생체에너지를 다시 100%로 충전하는 시간이다.


쉬어야 할 간절기에 쉬지 않는다고 해서 누구보다 앞서갈 수도 없고 앞서거나 뒤처짐의 기준도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호흡이 견뎌낼 속도로만 나아가려 한다. 간절기를 마음껏 즐길 테다. 다가올 더욱더 멋진 계절을 위해.



▶ 일명 털갈이 시즌이라고도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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