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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28.나는 '작은 회사'에 산다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서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고민하며 방황하던 시절, 우연히 스쳤던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경험과 견문이 쌓인 탓인지 내용도 새롭게 다가왔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속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논란도 끝이 없다. 많은 취업준비생은 대기업에 취직을 못 해서 난리지만, 중소기업은 인재를 못 구해서 난리다. 사회가 온통 일자리 부족으로 아우성친다. 저마다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다르니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며, 옳고 그름을 논하기 힘든 민감한 주제기도 하다.


하지만 통념에 기대자면, 대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흔히 연봉, 후생 복지 그리고 친지와 주변 인식의 영향이 크다. ‘하고 싶은 일’보다 얼마나 많은 경제적 여유를 안겨주느냐 또는 출세로 여기는 사회 관념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대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소모품이나 하나의 부품으로 비하하며 뛰쳐나오고 싶어 한다. 누구는 못 들어가 안달이고, 거기 있는 자는 나오고 싶어 안달이니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중소기업은 연봉과 복지는 상대적으로 뒤처지지만, 자아실현과 업무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견도 있다. 회사의 전반적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며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따르지만, 그로 인한 개인 역량의 성장 가능성이 양면적인 장점으로 거론된다.


시대는 참 많이 변했고 나날이 급속도로 변하는 중이다. 청년이 된 자손이 가족과 노부모를 부양하며 기우는 가세를 일으켜야 했던 과거에는, 경제적 수입을 위해 ‘나의 꿈’쯤은 희생해야 할 가치였다. 지금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구성원 대부분 경제활동을 하는 가정이 대다수다. 경제적 수입보다 자아실현과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의 중요한 가치가 된 지 오래다. 꿈을 잃고 영위하는 직장생활이 무의미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이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직업 가치관에 대한 담론이 대도시와 시골의 차이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적어도 나에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대도시와 시골의 차이’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대도시에서 누리던 편의와 복지, 넘쳐나는 다양한 문화 혜택을 버리고 지방 군 단위 지역에 사는 이유는 중소기업을 선택한 것과 비슷했다.


서울에 살 때는 분명 편리했고 회사는 복지도 좋았으며, 문화공연과 전시를 관람할 기회도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대부분은 이유 없이 바쁘기에 편리해야만 했고, 끝없는 야근과 밤샘으로 힘드니 복지가 좋아야 했으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공연, 전시, 여행을 즐기며 해소해야 했다. 없는 게 없는 과잉공급의 대도시지만 딱 하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뭘 위해 사는지 혼란스러웠고 이런 삶이 정말 원하던 것인가 고민은 점점 커졌다. 모든 선택에는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을 택하고 대도시 대신 지방 소도시를 선택한 삶이 타인에게는 실패로 비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나 포기가 아닌 ‘버린 것’이라 말하고 싶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 다시는 ‘갖고 싶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 후 삶은 180도 달라졌다. 대도시에 비해 부족한 부분도 많고 불편함도 크지만, 도시에서는 실종됐던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시골은 내게 그런 곳이다. 누군가가 제공하는 문화를 즐기는 대신, 직접 일상에서 소소한 생활문화를 그리며 만들어간다. 좋아하며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밥값도 벌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도시에서는 타인에 의해 하루가 채워졌다면 이제는 온전히 내 생각과 의지에 따라 하루가 채워진다. 도시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시골에서는 비교적 큰 부담 없이 도전하고 부딪히며 성장하고 이뤄갈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대기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중소기업을 원하는 사람이 있듯, 대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체성이 중요함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맹목적으로 선망의 대상을 닮으려 한들 이루어지기도 힘들뿐더러,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며 힘들어하는 시기도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둘러서 빙빙 돌아가더라도, 원하는 모습과 바라는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자생력을 가진 나만의 작은 세상, 하나밖에 없는 ‘작은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남해라는 ‘작은 회사’에 산다.



*이번 글의 제목은 ‘남해의봄날’에서 출간된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에서 차용했습니다.


▶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우리 가족이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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