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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1. 2019

30.끝맺으며. 다시 살아 봄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반려견과 꽤 오래 생활했지만, 집안에서 함께 지내는 몰티즈, 시츄, 슈나우저처럼 작은 친구들이었고, 중대형견에 속하는 진도 믹스견 백구와 지내는 건 처음입니다. 아니, 백구와 함께 지내는 일상뿐만 아니라 도시를 떠난 시골 생활도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었죠.


바쁘고 복잡하며 피곤함에 찌든 도시.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늘 불확실했던 직장 생활. 그리고 주말, 연휴, 명절에도 휴무가 보장되지 않는 업무 스케줄은 도시를 떠날 결심을 굳히는데 한몫한 듯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회색빛 도시를 떠나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알았어요.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온전한 여유로움과 낭만적 일상이 펼쳐지리라 기대했죠. 시골은 그런 미지의 파라다이스며 오아시스이자 엘도라도였습니다. 누구도 그렇게 얘기한 적 없었는데 현실을 대체할 가상의 이미지를 혼자 만들어낸 겁니다. 대도시의 생활은 숨통이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귀촌의 달콤한 꿈은 무럭무럭 커졌습니다.


이제 상상이 아닌 리얼 현실 버전이 된 시골은 꿈에 그리던 것처럼 로망으로 가득 찬 곳은 아니었습니다. 분명 도시에 비해서 좋은 점들도 많지만, 그 또한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되면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내가 문제였고, 내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아니 수십 년을 머물러도 하염없이 좋기만 한 미지의 이상향이 있기는 한 걸까요? 생각이 많아졌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시골이어서’ 만이 아니라 자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먹고 살려면 일을 찾아내고 만들어서 해야 하니까요. 스스로 찾아내서 일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아무 일을 하지 않는데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 훨씬 무서운 삶이 시작됐음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어요. 물론 생각이 많아지는데는 시골살이도 한몫하긴 했습니다.


부족한 편의시설과 기반시설, 괜찮은 비품이나 가구 하나 장만하려면 제품 가격보다 배송비가 더 나오는 상황이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배송이라도 가능하면 다행인 현실에서 대도시였다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했지만, 그런 이유로 시골살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또 중심을 잃지 않으려 매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많이 모자라고 미흡하지만 장문의 글 속에 담긴 사람도 저고, 반려견 ‘한량이’의 짧은 코멘트도 결국 제 이야기입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 깊은 생각에 빠져있으면 눈치라도 챈 듯 옆에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치대거나, 나란히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멀뚱멀뚱 바라보던 녀석은 꼭 제게,


“이제 고민은 그만해, 이러나저러나 별 차이 없어.”


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한량이가 아니었다면 진즉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갔을지 모를 시골의 삶입니다. 백구는 지극히 외롭고도 강한 아이였습니다. 영역을 침범하는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잔뜩 받지만, 힘든 시간을 꿋꿋이 견뎌내는 인내심을 가진 아이였고 저에겐 한없이 다정한 식구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인제야 생각해보면 마음이 복잡할 때 늘 옆에서 기분을 풀어주던 친구기도 했어요. 녀석은 늘 저를 움직이게 하고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게 만드는데요. 한량이와 함께 하는 산책은 많은 고민이 해결되믄 마법 같은 시간입니다. 짝꿍과 셋이 마을 골목길을 지나서 푸른 들판 사이를 거닐고, 잔잔한 해안도로를 오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괴롭히던 고민거리는 하나씩 정리되었습니다.


남해에서의 귀촌 생활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3~4년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타던 마음은 이제 대관람차를 탄 듯 평정심을 많이 찾았으며, 바라고 원하던 작은 꿈에 이렇게 하나씩 도전해보는 일상도 만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혼란스럽던 시절의 생각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며 차분히 정리하고 제 안에서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모자란 생각을 세상에 내어놓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부족한 글을 시간 내어 읽어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전히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평온하면서도 번잡한 어느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 마음속 작은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디는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 보렵니다.


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함께 여행하듯 살고 있겠습니다.




2019.  남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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