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도 백구도 처음입니다만]
건축과에 입학하면 1, 2학년 때 교양과목, 전공선택과목으로 색채학과 점/선/면에 대해 공부한다.
오롯한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면 분할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면을 만들려면 선이 필요하며 선은 결국 점을 찍는 행위부터 출발한다는 지극히 일반상식에 가까운 개념에서 전개되는 과목이다.
살아가며 종종 망각한다.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 색깔을 입히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을 그려 면을 먼저 만들어야 함을. 그 전에 하나의 점을 또렷이 찍어야 선은 시작될 수 있음을.
이십 년도 훨씬 지난 시절에 들었던 전공과목의 기본 개념을 삶 속에서, 일 속에서, 일이 곧 삶이 된 일상 속에서 깨닫는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법인데 결과를 먼저 얻으려는 욕심이 앞서니 자꾸 일을 그르치며 시간을, 비용을, 그리고 삶을 허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내려온 지 5년이 되어서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걸어보려 한다. 차근히 느리게 걸어도 계절은 다시 돌아 누구에게나 봄이 찾아오듯 혼란스럽고 좌충우돌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 다시 하얀 백지 위에 작은 점부터 시작해 선을 그려 면을 만들고 색을 칠해갈 시간이다.
이곳, 남해에서 ‘다시 살아, 봄’을 가득 만끽할 수 있기를.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응..?! 이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