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병원은 2주에 한 번씩 가며 약물처방과 심리상담을 따로 받는다. 먹는 약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처방되는데, 아침에 먹는 약은 신경안정제, 불안 공황 증세를 가라앉히는 약, 그리고 항우울증 약 등 3개의 알약이 들어 있고, 저녁에는 거기에 불면증을 해소해주는 수면제 성분의 약이 더해져서 5개의 알약이 들어 있다.
몸 어딘가가 아파서 병원을 다녀오면 항상 약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다니게 된 병원이라 조금 겁이 났을까? 이토록 꼬박꼬박 약을 잘 챙겨 먹기는 또 처음. 더불어 약을 먹기 위해 식사도 거르지 않게 되니 가끔 만나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얼굴색이 좋아졌다며 인사를 건넨다. 약 덕분일까 '밥심' 덕분일까 잘 모르겠지만.
처방약의 개수도 놀랍고, 약을 빼먹지 않고 꼭꼭 챙겨 먹는 나의 태도 변화도 놀랍지만, 병원에 가서 정말 놀랐던 건 따로 있었다. 아무리 작은 개인병원이라 하더라도, 대기실이 꽉 차서 빈자리가 없을 만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치매 예방을 위해 병원을 찾으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성장 발달 과정의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엄마 손을 잡고 놀이방 오듯 찾아오는 아이들도 많고, 또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젊은 층까지 그야말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병원 대기실을 늘 가득 채웠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었던 세상이 병원 안에서만 따로 펼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이 많이 힘들고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아픔이 있구나 싶은 생각, 그리고 내가 어릴 때는 정신건강의학과도 거의 없을뿐더러,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하면 부정적 인식이 커서 꽤나 난리법석이었는데 한편으론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래도 참 건강한 방향으로 많이 달라졌기에 어쩌면 나 또한 아무렇지 않은 듯 여기 대기실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는 거겠지.
오늘도 대기실 앞자리의 아이는 기다림을 못 이기겠다는 듯 포클레인 자동차 장난감을 손에 쥐고 온 병원을 파 헤집을 기세로 '부릉부릉-' 거리고, 옆자리의 어르신은 병원을 빼먹지 않고 잘 다니고 있다며 휴대폰 너머의 자녀분을 안심시키고 있으며, 뒷자리의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춘은 무엇이 힘든지 나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이름이 불리면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오고, 간호실에서 처방전을 받아 진료비를 결제하고 병원문을 나선다. 어느 누구 하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 없고, 병원을 오래 다닌 사람들은 다음엔 몇 월 며칟날 오겠노라며 간호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아무도 이상하지 않은, 어느 누구도 선뜻 환자라 부르기 어려운,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 스쳐 지난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정신과 병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조금 주눅 들어 뭉쳤던 어깨가 살금살금 풀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