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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21. 2020

5. 다시 푸르러지기를

[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다른 병원에 예약한 날짜가 되었고, 가게에는 '임시 휴무' 쪽지를 붙였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에서 도시의 병원을 가려면 운전을 해야 하기에, 약을 먹으면 나른하고 졸려서 곤란해지는 걸 핑계 삼아 아침약을 건너뛰고 병원이 있는 진주로 차를 몰았다. 겨울의 막바지,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은 마음을 씻어 주는 듯했고, 차 안에서 맞는 늦겨울의 햇살은 참 따스하게 마음을 데워줬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낯선 곳을 향해 두근대는 마음을 달래며 도착한 작은 개인 병원은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고 기대했던 것만큼 밝고 온화한 분위기였다. 오전 일찍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러 사람 앞에 노출됐을 때 느끼는 불안함은 조금 누그러졌다. 초진 접수를 하고 대기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얼마나 지났을까, 진료 순서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젊으셨고 첫인사와 말투부터 온화하고 따뜻함이 가득한 분이어서 잔뜩 굳게 만들었던 긴장감이 사르르 흩어져 날아갔다. 의사 선생님의 부드러운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꽤 오랜 시간, 한참 동안 상담을 나누며 힘들고 괴로웠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정 조절이 힘들어져 더 이상 얘기를 나누기도 힘들뿐더러, 오늘은 상담 치료가 아닌 일반 진료 예약을 하고 왔기에 의사 선생님의 시간을 많이 뺏을 수 없어서 다음번 상담 치료 날짜를 예약하고 진료실을 나섰는데...


'어이쿠....!!'


 대기실에는 사람이 가득 앉아 있었고, 시간은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뒤범벅된 눈가를 휴지로 닦으며 나오는 와중에 정신이 번쩍 들어, '이런... 민폐 환자가 되어 버렸군...' 씁쓸한 당혹감이 피어 올라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오랜 시간이 지난 나중에야 느끼게 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의 독특한 분위기는, 대기실에 있는 어느 누구도 오랜 기다림에 대해 불평이 없는 편이란 것. 다들 마음이 힘들어 찾는 병원이어서 그럴까? 내 앞의 사람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도, 내 순서가 될 때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불평이나 짜증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이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나 역시 간혹 긴 기다림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처음 '우울증 자가진단'을 받은 후 지인들에게 상의했을 때, '어떤 병원을 가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위안이 되어주는 병원에서 길고 긴 시간이 걸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제 내 일상은 이전과 조금은 다른 시간들로 채워지겠지.


'다시 밝고 건강해지고 싶다.'


그렇게 되고 싶고, 그렇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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