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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Nov 14. 2020

3. 정신병원은 다 이럴까?

[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잠깐의 대기 후에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앞에 우뚝 섰을 때는 꽤 당황스러웠다.


진료실 왼쪽 편으로 철창이 쳐져 있고 그 창살 너머로 긴 복도와 계단이 눈에 들어오는데, 중증 환자 분들이 치료를 받는 입원 전문 병원임을 알고 왔지만, 처음 와 보는 정신 병동의 생경한 풍경에 잠시 우울함을 잊게 만들 만큼 당황스러움과 큰 긴장감이 밀려왔다.


'나도 이렇게 중증인 걸까?'

'그렇게 진단되면 이런 곳에 입원을 하게 될까?'


입학식에서 부모님의 손길을 놓친 초등학생 마냥 긴장감에 심장은 쿵쾅거리고, 갈 곳 잃은 시선을 겨우 추슬러 '똑똑-'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채색의 삭막함이 깃든 사무실 분위기의 진료실, 그리고 마치 밀린 일을 처리하듯 사무적 말투로 환자를 맞이하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아...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건 아닐까' 싶었다.


드디어 진료는 시작되고,

자가진단 문항에도 있던 내용이 대부분인 의사 선생님의 질문들에 답을 하다 보니, 우울증세가 심해 보인 다며 약을 처방해주겠다 하셨다. 정말 순식간에 질문과 답변, 진단이 내려지는데, '아... 내가 너무 감성적인 상담을 기대했었나...' 싶었고, 뒤 이어 약의 복용법과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주시는데, '처음부터 너무 센 병원을 찾아왔구나...' 싶은 기운이 엄습했다.


'약은 기본적으로 하루 두 번 드셔야 해요.'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증제는 공통이고, 취침 전 약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어요.'

'항우울증제는 갑자기 약을 중단하면 아무 효과가 없으니 꾸준히 드셔야 해요.'

'항우울증제를 계속 복용하면 성기능 중에 사정이 지연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조루증 치료제로도 쓰여요. 그런 증상이 느껴져도 정상 반응이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운전하기 전에는 약을 복용하지 마세요.'

'약은 점차 강도를 늘려 갈 겁니다. 혹시 어지럽거나 속이 메슥거리면 말씀하세요.'

'.............'


마치 매뉴얼을 영혼 없는 기계음으로 재생하는 듯한 의사 선생님의 상세한(?) 설명. 어느 순간 내용은 들리지 않고, 주파수를 잃은 라디오 마냥 웅웅 거리는 잡음이 되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하긴... 의사 선생님도 나 같은 환자를 얼마나 많이 만나겠어.'

'일일이 환자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상담해주기엔 진료 시간도 여건도 허락지 않겠지...'


처방 전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서니 뭔가 묘한 기분이 스미는데, 철창 안에 갇히지 않아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변강쇠가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약국에 처방전을 건네주고 약 조제를 기다리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신과 병원은 다 이럴까...?'

'좀 무서운데, 없던 우울증도 생길 거 같아.'

'어떡하지? 다른 병원을 가야 하나...?'

'일단 약을 2주 치 받았으니, 복용해보고 결정하자'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한 후, 진료를 받으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했던 일말의 기대는 약간 공포영화를 관람하고 나온 듯 심장이 찌릿찌릿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래도 입원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야'라는 위안이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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