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는 병원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다. 생활하는 곳은 경상남도 남해군이지만, 이 작은 시골에는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병원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데, 인구 4만 남짓한 남해군에 비하면 인구수만 8배가 넘는 진주시는 엄청 대도시인 셈이다.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인 병원을 가는 날에는 마치 의식처럼 꼭 들리는 곳들이 있다. 시골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른바 도시 문물.
바로 패스트푸드점과 대형마트 구경을 빼먹을 수 없는데, 뭐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 꺼냈지만 딱히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게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 아닐까.
남해군에 없는 것, 쉽게 말하면 버거킹, 서브웨이, 맥도널드 중 한 곳과 이마트, 홈플러스 중 한 곳은 꼭 들렀다 온다. 대인기피와 공황장애 증세가 있어서 사람이 많은 대형마트 구경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아서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알차게 구경도 하고 도시의 분위기를 잔뜩 즐기곤 한다.
시골로 귀촌하면 자연식 또는 집밥만 먹으며 살 줄 알았는데, 작은 소품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겨 즉석식품이나 간편식을 더 즐겨 먹는 듯하다. 가끔 지인들이 놀러 와 먹고 싶은 음식을 꼽으래도 피자나 햄버거, 치킨, 샌드위치 등 패스트푸드 일색이니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목마름은 항상 상대적으로 생겨나는가 보다. 아무튼, 빅맥 세트나 와퍼 세트를 시켜 들고 도시 풍경이 내다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야금야금 감자칩을 씹을 때면, 잠깐이나마 도시에 살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향수(?)를 달랠 수 있어 오묘한 기분이 스며든다.
곳곳에 도시 냄새를 좀 묻혀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괜스레 차의 속도는 느려지는 것도 빼놓지 못할 증상이다. 앓고 있는 우울증, 대인기피증, 공황장애 등의 증세 때문에 도시는 분명 싫은 곳인데, 모처럼의 외출이라 집에는 더 가기 싫은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남해로 들어서는 연륙교인 삼천포대교에 다다르면 뭔지 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이 스며든다. 시골에는 도시의 도로에 비해 가로등이 정말 없는 편인데, 대교를 건너 남해로 들어서면 어느새 어둑해진 주변 풍경에 쓸쓸함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