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몸이 아파도 병원을 잘 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약 먹는 것과 주사 맞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해서 온 몸이 아파 끙끙대며 드러눕더라도 나을 때까지 버티곤 하는데, 잔병치레는 잘 없는 편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대신 일 년에 꼭 한 번씩은 큰 몸살을 앓곤 한다. 어릴 때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아오며, 아프면 안 된다는 생존본능 같은 성향이 강하게 몸에 밴 듯하다.
그러다 종종 병을 키우곤 할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몸이 아닌 마음이 아파서였을까? 꽤나 겁을 먹은 듯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는 징조를 오래전부터 느꼈음에도 '괜찮아지겠지, 곧 좋아질 거야'라며 참았는데, 스스로 그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아채곤 찾게 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증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 모습에 간혹 놀라곤 한다. 병원을 다닌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의사 선생님에게서 '진료를 한 번도 안 빼먹고 잘 받으셔서 다행이에요'라는 얘길 듣고 '내가 이렇게 말 잘 듣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다. 병원 진료와 처방약에 한 번 길을 트고 나니까 몸이 조금만 아파도, 약간만 피곤해도 약부터 찾거나 병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뒤늦게 멘털을 덮친 약바람(?)에 급기야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지금은 병원 약과 영양제를 빼먹지 않고 잘 챙겨 먹는 사람이 되었다. 병원 약만 아침에 4알, 저녁에 5알을 먹어야 하는데 사이사이 먹는 영양제만 비타민, 항산화제, 간 기능제, 루테인 등등 8가지나 챙기다 보니. 밥보다 약을 더 자주 먹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이 들면 겁이 많아진다 했던가. 마흔 중반에 들어서서 몸이 안 좋아질까 겁을 잔뜩 먹긴 먹었나 보다. 사실은 정말 겁이 날 때도 있다. 마음의 병을 치료받고 있는 상황에서 몸까지 아프면 혼자 생활하는 독거노인의 일상은 참 보잘것없이 꾸깃꾸깃 추레하게 구겨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몸과 마음을 떼어놓고 분리해서 생각하곤 했는데, 몸도 마음도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온전한 '나'라는 것을 마음이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아파서 장기치료를 받고 있는 김에 마음도, 몸도 둘 다 잘 챙겨보려 한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마음이 튼튼해야 몸도 튼튼할 테니까. 이런 모습에 스스로가 짠 해질 때도 있지만, 뭐 어쩌겠어.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편안한 일상을 찾을 때까지 애쓰는 수밖에.
사느라 약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