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따라 마음이 꽤 요동치는 편이다. 외부의 어떤 자극 요인 없이 날씨 하나 만으로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거리는데, 날씨가 너무 좋으면 기분이 좋고, 구름이 잔뜩 끼거나 비라도 내리면 더없이 우울해진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일 거라 생각되지만 우울증을 앓게 된 후로 느끼는 감정의 정도 차이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비가 오기 직전의 어둠 컴컴하고 침침한 구름 아래서는 온몸이 무너져 내려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듯 극도의 침체된 감정을 마주하게 되고,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마주할 때면 조증인가 싶을 만큼 기분이 명랑해지고 쾌활해지는 이 마음을 어쩌지.
일기예보를 접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우울증을 앓기 전의 일기예보는 날씨에 따라 가게에 손님이 많거나 적음을 추측하는 예보였다. '오늘은 손님 좀 많겠다!', 또는 '오늘은 손님이 영 없겠는데?', '오후에 비바람이 몰아친다는데 오늘은 일찍 닫을까?'처럼 작은 가게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지 결정을 도와주곤 했다.
우울증을 앓게 된 후의 일기예보는 곧 마음 예보가 되어 버린 셈이다.
앞서 얘기했듯 날씨에 따라 감정의 기복과 편차가 워낙 심하다 보니, 내일의 감정을 예측하는 수단이 되어주곤 한다. 어쩌다가 병원을 가는 날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장 최악의 감정상태가 되어 버린다. 잔뜩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면 병원을 가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줄곧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며, 이런 날은 심리 상담과 치료 시간마저 순탄치가 않다. 회색빛 하늘에서 내려온 우주의 기운이 자꾸 부정적이며 침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지 않으려 몸을 활발히 움직여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갯벌에 발을 잘 못 디딘 마냥 점점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말 한마디,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에 어둠과 짙은 그을음이 묻어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놓이게 된다.
의사 선생님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스스로를 부정하면 할수록 더 우울해질 거예요'라며 위안을 건네면서도, 다만 한 번씩은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자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라 하셨다. 그 '무엇'을 찾아내면 정말 별 것 아닌 이유일 수도 있으며 쉽게 해결이 될 수도 있으니, 감정의 기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복을 불러일으키는 '무엇'을 찾아보자 하셨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작은 것 하나라도 찾아보고 한 가지씩 차근히 해결하다 보면 점점 좋아질 거라고.
내게 그 '무엇'은 무엇일까? 쉽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우선 떠오르는 건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의 '습도'와 '물기', 그리고 '어둠'이 싫었다. 몸을 감싸는 눅눅한 기분이 너무도 싫어서 감정까지 눅눅해지는 건 아닐지. '그래? 습도와 조명을 먼저 조절해볼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되면 집안 모든 곳에 전등을 켜서 환하게 하고, 여름에는 제습기를, 겨울에는 난방을 돌려 뽀송뽀송한 환경을 만들어 보니 기분도 훨씬 괜찮아졌다. 비와 함께 외출을 해야 할 땐 작은 타월을 가지고 다니면서 차에 타거나 실내에 들어서면 몸과 옷에 묻은 물기를 툭툭 닦아내며 가능한 습도와 어둠에서 멀어지려 하는 행동이 우울한 감정을 완화하는데 꽤 긍정적이었다.
마음에 병이 생겼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만큼 예민하고 디테일하게 반응을 한다는 의미일까? 주변 환경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작고 소소한 부분이라도 나에게 맞도록 애써 바꾸어 놓는 미세한 행위들이 바스라진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수시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가게나 생업을 위해 기상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에 따라 변할지도 모르는 심리 상태를, 다가올 감정 변화를 예측해서 적절히 대처하고 싶기 때문이다. TV의 채널을 돌리다 보면 어디선가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전해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