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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Dec 14. 2020

13. 혼자여도 괜찮아

[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신다.


이곳 병원에는 노인 치매 예방과 어린이 심리 성장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서 거의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마주치는데, 멍하니 앉아있던 나의 시선이 병원에 들어선 할머니를 향했다. 뒤축을 구겨서 신은 단화를 벗어 입구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실내용 슬리퍼를 갈아 신은 할머니는 조심조심 접수창구로 향했다.


초진이신 듯 간호 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으며 진료 접수를 하신 뒤에 대기실 소파에 스러지듯 앉은 후 깊은 숨을 내쉬는 것이 뭐랄까, 마치 안도의 숨을 쉬시것만 같았다. 이내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데,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자녀분인 듯했다.


"으응, 나 병원에 도착했어잉. 잘 왔응께."

"으응, 접수하고 기다리는 중이여."

"아니 아니, 진찰은 아직 안 받았고 기다리는 중이랑께."

"머시 미안혀, 괜찮어 괜찮어, 할매라도 혼자 다닐 수 있응께."

"으응, 진찰받고 다시 전화할랑께, 그만 끊어잉"


소곤거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할머니의 통화내용은 대기실에 다 들릴 정도였고, 함께 모시고 오지 못해 죄송해하는 자녀분들께 괜찮다고 하시는 말에 애잔함이 밀려왔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따라 다들 혼자 방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모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를 제외하곤 전부 혼자서 병원을 온 듯 보였다. 다들 할머니의 통화내용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사연까진 모르더라도, 다들 누군가의 가족일 텐데 혼자 덩그러니 앉은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애달프게 다가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정신과 진료는 이토록 외로운 과정을 지나야 해요'라고 누군가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앳된 스무 살 무렵부터 가족과 떨어져 늘 혼자 지내왔다.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몸을 다쳐 입원을 해도, 어디가 아파 쓰러져도, 바로 그 순간을 함께 나눌 가족은 늘 전화기 너머에 있었다. 친구나 이웃들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래도 가족과는 또 다른 느낌이니까. 어쩌면 치료가 필요한 지금의 심리 상태도 수십 년 간 철저히 혼자 지내온 시간이 만들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손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발목을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때도, 열병을 앓아 드러누웠을 때도, 급성장염으로 응급실 신세를 질 때도 항상 혼자였지만, 오히려 지금, 마음이 아프고 힘든 바로 지금이 더 힘들고 외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몸이 아플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마음이 아픈 지금은 누군가의 부축이 간절히 그리운 마음은 왜 그런 건지 잘 모를 일이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며 오랜만에 아버지와 형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아요, 많이 좋아졌어요. 혼자 오죠 누구랑 와요. 하하'

'혼자 왔지만 괜찮아, 진료 잘 받고 집에 가는 길이야.'

짧은 통화를 마치고, 차에 시동을 거니 뜬금없이 오랜 친구에게서 안부전화가 걸려 온다.


비록 몸은 혼자 떨어져 있더라도 우린 저마다 누군가와 함께 '우리'라 부를 수 있으며, 지금 당장 같이 있진 않아도 '혼자'가 아닌 하루를 또 살아간다. 집에 오는 길이 쓸쓸하지 않았다.


'혼자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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