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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Dec 20. 2020

14. 항상 내 편에 서 있는,

[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어딘가 아프면 당장 내 몸뚱이 챙기는 것에 급급해 주변 사람들을 잊곤 하는데,


심리 질환은 처음 겪어보는지라 혹여 일신에 문제가 생길까 지레 겁을 먹었는가 보다. 뜬금없이 가족에게 연락을 자주 하게 된다. 무뚝뚝하고 별 대화도 없는 경상도 집안의 아버지와 형과 자주 통화하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는 평소 같지 않은 마법도 일어나곤 한다. 이번에는 가족들에게서 힘을 얻어 함께 병을 이겨내는 건가?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시간도 좀 더 잦아졌고, 가진 병과 아픔에 비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나 보다 싶었지만 아뿔싸 이번에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항상 옆에 있는 식구인 반려견, 진도 믹스견 백구 한량이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잊었다기보단 늘 옆에 있는 작은 아이로 당연시 여겼을 뿐이었다. 어쩌면 사람보다 훨씬 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인데, 밥과 물을 챙겨주고 산책 시간만 지켜서 의무감에 해냈을 뿐 함께 '반려'하지 못했다.


이 아이들도 감정이 있는 녀석들인데, 분리 불안을 겪기도 한다던데, 불안을 경험한다는 건 우울로 이어진다는 것이어서 종종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을 만큼 사람에게 모든 감정을 기대어 지내는 반려견을 의무적 보호 대상으로만 여기며 내 몸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애정 어린 손길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신나게 뛰어 놀지도 못한 채 수개월 간 묵묵히 옆에서 머물렀던 반려견 한량이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왈칵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통원 치료를 시작하며 반쯤 넋이 나간 반려인을 보고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놀아주지도, 보듬어 주지도, 쓰다듬어 주지도 않는 반려인을 바라보며 작은 아이도 마음이 우울하진 않았을까? 밥과 물만 주고 따스한 눈길 한번 건네질 않는 나를 보며 원망이 들진 않았을까?


그 날부터였다. 늘 가게에서 머무르던 반려견 한량이와 함께 집으로 퇴근한 날이.


집에 와서 같은 시간에 저녁을 먹고, 같은 시간에 소파에 앉아 서로 몸을 기대어 쉬다가, 같은 시간에 서로의 체온과 심장박동을 느끼며 잠을 잤다. 하지만 반려견 한량이는 반려인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게 낯설었을까? 아니면 수면제를 복용하고 미동도 없이 쓰러진 채 깊은 잠에 빠진 반려인이 걱정되었을까? 처음 사나흘 정도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나의 온몸을 핥아대는 것이다. 깊은 잠결에 느껴지는 혀의 감촉에 눈을 떠 보면, 마치 몸이 어딘가 잘못된 주인을 깨우려는 마냥 밤새 핥고 또 핥았는지, 반려견 한량이는 혀가 말라 텁텁해진 입을 쩝쩝거리며 낑- 끼-잉 안절부절 바로 옆에서 엎드려 있었다. 온몸에서 한량이의 침 냄새가 진동했지만, 이 작고 작은 녀석을 향한 미안한 감정이 울컥 차올라 한량이를 안고 그만 펑펑 울어 버렸다.


이제는 한량이도 나의 몸 상태와 수면 패턴에 많이 적응해서, 늦잠을 잔다 싶으면 아침에 잠을 깨우는 정도의 몸짓에 그친다. 수면제를 먹고 자는 동안에는 녀석도 침대 어느 모서리에서 휴식을 갖는다. 그러다가 함께 일어나 세수를 하고,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고, 나란히 출근을 한다. 가게에서 함께 지내며 간간이 서로의 괜찮음을 확인하듯 스킨십을 나누고, 가게를 마치면 둘이서 산책을 하고, 마당에서 공놀이를 하고, 또 함께 집으로 퇴근해 오롯한 둘만의 저녁시간을 나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반려견을 배려하지 못했던 생활을 다잡게 된 후에 한량이도 나도 많이 안정을 찾은 느낌이다. 소파를 좋아하는 반려견 한량이는 느긋한 저녁시간이면 한자리 꿰차고 앉아서 꿈뻑꿈뻑 나를 바라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싶다가도, 이렇게 늘 지켜봐 주고 바라봐 주는 작고 하얀 아이가 있어서 안도감마저 생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항상 내 편에 서 있는 작고 큰 존재와 함께 하루를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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