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때는 2019년 2월 하순, 막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 병원을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어느덧 10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간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긴 시간 동안 병원을 다니면서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나도 얼굴을 보여드린 적이 없다. 병원 대기실에서 몇 번씩 마주친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나의 이야기는 마스크를 한번 거쳐 선생님께 전달되었고, 선생님의 이야기도 마스크를 한번 지나서 들렸으니, 어쩌면 마스크 안에서 약간 울려서 나오는 소리를 서로의 목소리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병원에서든 일상에서든 누구를 만나도, 상대의 얼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눈과 귀뿐이라 표정을 읽기 어려운 요즘이다. '대인관계'를 가질 때 '상대의 눈을 보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종종 읽곤 했는데, 본의 아니게 그 중요한 포인트를 아주 잘 실천할 수밖에 없는 사회환경이 된 걸까? 눈 말고는 보이는 게 없으니 말이야. 감정이 흔들릴 때면 마스크 덕분에 호흡이 짧아져서 바로 말을 내뱉지 못하고 몇 번의 호흡을 조절한 후에 입을 열 수 있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흥분된 생각을 가라앉히는 필터 역할을 어쩌면 마스크가 해준 것일 수도 있겠지?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며, 약 조제를 기다리는 약국의 의자에 앉아서, 우연히 사람들의 눈빛을 보게 되면 우리가 가진 '눈'은 정말 많은 감정을 표현하는구나 싶다. 어쩌면 선글라스를 쓴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도 그의 눈빛을 볼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굳이 말과 대화로 표현하지 않아도 지금의 감정이 어떤지 두 눈과 눈빛 그리고 시선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니 사람의 눈은 참 신비롭기 그지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이라는 가사를 가진 어떤 제과 CF송도 있었듯이.
병원을 처음 다닐 무렵 나의 시선은 늘 불안했다. 정면을 주시하지 못하고 늘 허공을 올려다보거나 바닥을 내려다보며, 사람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벽이나 탁자 등 다른 곳을 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그때에 비해 요즘은 조금씩 조금씩 눈을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게 되어서,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마스크 위로 살짝 보이는 두 눈에서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온화하고 따뜻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까지 포근히 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작은 두 눈에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나 보다. 마음이 흔들리면 눈이 흔들리고, 마음이 힘들면 눈도 힘들어한다. 마음이 피곤하면 두 눈도 충혈되고, 마음이 즐거우면 눈도 웃게 되며, 마음이 건강하면 눈동자도 맑아지는 듯하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맑고 건강하며 또 따스하고 편안한 눈빛을 갖고 싶다.
아무리 마스크를 꽁꽁 쓰고 있어도 '저 사람은 표정이 참 따뜻해'라는 얘길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