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에 애정 한 스푼
일의 의미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프로젝트가 흥미롭지 않을 때, 그 질문은 더 자주 떠오른다.
커리어 전반에서 진심으로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몇이나 될까.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나에게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은 내가 손 든 것도, 마음에 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직의 방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어졌고,
“이번엔 이걸 해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일에는 처음부터 확신이 없었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지점도, 잘할 수 있다는 믿음도 흐릿했다.
관심사와 거리가 먼 주제는 이따금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공감되지 않은 맥락, 설득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논리.
그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자연스레 느려졌다.
일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무언가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맡은 역할을 수행했고, 기한에 맞춰 결과물도 만들어졌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마음이 닿지 않았다.
흥미 없는 일에서 나는 어떤 의미로 나를 붙잡아야 할까.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 채, 몇 주를 흘려보냈다.
바쁘지만 어딘가 비어 있던 시간 속에서
자꾸만 생각이 머무는 지점이 생겼다.
모두가 '원래 그런 거지'하고 넘겼던 맥락.
딱히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누구도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그 지점을 붙잡고 있었다.
출퇴근 길, 점심 산책길
잠시 생각이 비는 순간이면 자꾸 그 지점으로 생각이 흘렀다.
왜 그렇게 동작했는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답도 없는 질문들을 조용히 되짚고 있었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구조의 헐거움을 발견하고,
내 나름의 논리로 다시 엮어보았다.
매끄럽지 않던 설명, 어딘가 어긋나 있던 흐름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며 탁하고 맞물렸다.
그때 그 순간,
나는 약간의 몰입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설득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넘어가지 못했던 지점을 내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는 감각이
잠시라도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비록 프로젝트 전체에 애정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놓쳐질 수 있었던 부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지점에서만큼은 내 사고가 분명히 닿았다는 실감이 났다.
그 감각 덕분에
일과의 거리감이 조금은 좁혀지는 듯했다.
흥미와 맞닿은 일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가 닿는 곳에,
나는 애정 한 스푼쯤은 더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