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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Sep 10. 2024

밴쿠버 건축회사:담 - 프리퀄

나는 세계로 출근합니다-밴쿠버로 떠난 토종 한국인의 건축회사 생존방법

바야흐로 팬데믹이 끝날 무렵인 2022년, 캐나다 밴쿠버의 대부분 건축 회사는 재택근무가 종료되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평일 오후,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메일 함에 아래 같은 메일이 도착했다.

청년 해외진출 성장 스토리 공모전 수상자 안내


2021년에도 지원했었던, 하루 만에 후다닥 쓰고 떨어졌던, 산업인력공단 산하 월드잡에서 매년 열리는 청년 해외 진출 성장 스토리 공모전 수상 안내 이메일이었다. 2022년에도 2021년 때와 똑같은 원고를 냈는데, 이번에는 합격한 것이다.


바로 매니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우수상을 영어로 뭐라 할지 몰라 글쓰기 대회에서 3등을 했다고 전했다. 'Are you serious?!'라며 내 책상으로 와 축하해 주며, 내 수상작을 어디서 읽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당시 나는 투고를 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여, 'I wish nobody would read it.'이라고 말하니 웃으며 'You're funny. You make my day!'란다. (시간이 흐른 뒤 내 글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보여줄까 했으나 참았다.)


단 하루 만에 쓴 글이었다. (퇴고까지 총 이틀 걸렸다.) 더군다나 캐나다 이민의 동기가 현실도피성의, 매우 부정적이라 처음부터 당선될까 싶었다만 브런치 스토리에 원문을 공유해 본다. 본편의 소주제인 실무, 회사, 영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밴쿠버 건축회사:담의 프리퀄 정도 되리라. (당선집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어색한 표현들이 발견되었지만, 수정하지 않고 원문을 그대로 올려본다.)




캐나다로 오게 된 계기와 전문대 졸업까지


우연한 계기로 캐나다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십수 년간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받아온 영어점수들과 주위의 기대 등 나는 항상 내 영어에 만족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1시간 넘도록 나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 당시 어 떤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머리 한 대 크게 맞은 느낌을 아직까지 지울 수가 없다. 그날부터 더 이상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컸다. 내신 영어, 수능 영어, 대학 간판, 9급 공무원, 10대부터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나를 둘러싼 사회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마침 워킹홀리데이라는, 20대 청년에게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많은 국가들 중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는 나의 영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그 외국인이 캐나다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5년 뒤에 캐나다로 떠나기 위해 아래와 같이 계획을 세웠다.


1년 차 - 영어공부

2-3년 차 - 워킹홀리데이

4년 차 - 전문대 졸업

5년 차 - 취업과 영주권 지원


당시 캐나다 국공립학교에서 공부한 전공과 관련된 직업군에 1년 동안 일했을 때,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5년’이라는 시간이 나왔다. ‘캐나다에서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막연히 1순위는 자동차 정비였다. 육군 운전병 시절 정비병 어깨너머로 나의 트럭(?)을 2년 동안 관리한 경험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과 각 가정의 큰 소모품인 자동차는 항상 정비가 필요하고, 따라서 정비공으로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평소 궁금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건축· 기술이 2순위였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유학원 없이 전문대 진학 방법을 알아보는 중에 자연스럽게 2순위였던 건축·기술학과 진학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가장 큰 계기는 진학할 학교의 야간 파트타임 건축 과목을 들었는데, 매우 재밌었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일을 본업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정규 학과 입학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한 것이 아니어서 고등학교 수학Ⅰ, Ⅱ 와 물리Ⅱ 성적이 필요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준비한 고등학교 영문 성적표는 졸업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의 수학Ⅰ, Ⅱ 는 한국의 중3 수학 수준이라 매우 쉬웠다.


하지만 물리Ⅱ 는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고1 때 과학이 싫어 문과를 택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캐나다에서 EBS 수능 물리를 듣고, 가끔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한국인 교포 대학생으로부터 과외로 몇 번 받았다. 마침내 수학 95점, 물리 90점을 만들어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입학은 수월했으나, 졸업은 이야기가 달랐다. 나의 학과는 4년의 교육 과정을 2년으로 압축한 과정이었다. 2년 동안 듣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학점, 매일 있는 쪽지시험과 숙제, 팀별 과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다행히 주위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은 취업 준비


캐나다 건축 설계 회사의 취업 준비는 어렵지가 않으며, 면접 연습은 세 파트로 구분할 수 있다.


• 자기소개(지원동기/학교생활)

• 예상 인터뷰 질문

• 포트폴리오 소개


항상 면접은 ‘Tell me/us about yourself.’라는 자기소개 시간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자기소개의 철저한 준비는 긴장되는 인터뷰를 성공적인 인터뷰로 풀어나가는 첫걸음이다. 자기소개 파트는 Architectural Technologist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BC Work라는 BC주정부 고용노동부의 유인물을 참고했다. 학교 생활과 흥미로웠던 과목들에 대한 이야기 준비도 좋은데, 학교의 강의 계획서(Course’s Outline)를 정독하면 좋은 키워드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지원할 회사 홈페이지에 인재상 관련 키워드들이 있는데, 이것을 자신의 성향, 특기와 결부시켜 내가 회사의 적절한 지원자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건축 프로젝트들 중 흥미롭게 본 프로젝트들에 대한 느낀 점과 궁금한 점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면접 예상 질문 리스트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이것을 토대로 예상 답변 등을 작성하되, 외우기보다 여러 번 큰소리로 자주 내뱉어보는 것이 좋다. 예상 답변을 외웠다면 실전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나타나고, 혹여나 외웠던 문장들이 생각이 나지 않거나, 꼬였을 경우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포트폴리오 소개 연습 역시 외운다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설명하며,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원어민 과외 선생님을 고용하여, 인터뷰 모의 연습과 포트 폴리오 소개 연습을 했고,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을 배우며, 영어 발음도 고쳐나갔다



면접 시간은 최소 20분, 길면 길수록 좋다


하지만 정작 취업은 힘들었다. 백 군데가 넘게 지원했지만, 연락 자체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6개의 회사에서 면접제의가 왔고, 이중 세 군데는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었는지 5분 만에 면접이 끝나버렸다.


보통 인터뷰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 ‘취업을 기대해 볼 만한 인터뷰였는가?’의 판단 기준은 면접 시간이 20분을 넘겼는 지이다. 나는 20분을 채운 인터뷰는 두 곳이었고, 단 한 군데만이 30분을 넘겼다. 이 인터뷰에서 많은 질문들을 받았는데, 모두 인터뷰 예상 질문 리스트에 있는 것들이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질문자가 내가 대답할 때마다 종이에 무엇인가 많이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었다. 포트폴리오 설명 시간 때도 내 도면 자료를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고, ‘잘했다.’라는 곳곳의 칭찬은 진실하게 들렸다.



채용 거절 이메일에는 인턴십 제안의 승부수를!


그 회사로부터 채용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며칠 뒤 날아온 이메일은 더 경력 있는 사원을 찾는다며 나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인터뷰 기회에 대한 감사 이메일과 함께 인턴십을 문의했고, 사장은 2주 인턴십을 수락했다. 인턴십 기간 중 인사담당자는 직원들이 나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귀띔을 해주었는데, 결국 나는 채용 제의를 받게 되었다. 순수하게 경험을 위해 인턴십을 요구했던 터라 얼떨떨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3년 동안 일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다른 회사가 나에게 채용 기회를 준 것이다. 당시 인턴십 회사의 사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 컸으나,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북미 전역의 서쪽 해안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회사(Having transformed skylines across the West Coast of North America)’라는 야망 있는 회사 문구가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지금 회사에서 고층 건물들만을 다루며, 다양한 디자인들을 경험하고 있어 아주 만족하고 있다.



건축 설계 업무에 언어의 장벽은 없다


2년 차까지 회사에서 늘 초조했다. 책상 전화기가 울리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 성격 탓일 뿐 업무 내 영어*는 매우 쉽고 잘 들린다. 건축 설계 업무 특성상 건축도면이 항상 책상에 펼쳐져 있고, 대화는 이 도면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100% 문법에 맞게 말하지 않더라도, 손가락으로 도면을 가리키며 대화하면 원어민 들과 의사소통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도면을 매개로 영어가 매우 쉬워지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커닝페이퍼를 보며 영어 말하기·듣기 시험을 치는 느낌이다.


또한 업무용 이메일은 간략하고 명료한 것이 원칙이라 온갖 미사여구나 심지어 서론도 없이 직접적인 한 두 문장으로 시작과 끝을 내면 된다. 슬랭 (Slang) 역시 업무 이메일에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원어민의 슬랭 (Slang)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이메일을 읽고, 쓰기는 매우 수월하다

*업무 내 영어: 동료/상급자와의 단독대화나 작은 회의, 그리고 건축주와 협업 회사 직원들과의 문답 그리고 프로젝트 회의 등이다.



성실함은 최고의 무기


하지만 동료들과 업무 외적으로 하는 농담이나 간단한 대화는 아직도 어렵다. 따라서 업무 외 대화는 주로 듣고, 적절한 리액션을 취하는 것뿐이다 보니 나는 매우 조용한 동료로 인지되고 있다. 원래 성격은 수다스럽고, 모임을 주도하는 성격이라, 회사에서는 다른 자아로 활동하고 있어 자존감이 떨어질 법도 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회사는 여러 사람들과 두루 지내며 인기를 뽐내는 집단이 아니라, 업무와 이익 창출의 집단이다 보니, 나의 또 다른 자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이미지가 남아 회사는 나를 좋아한다. 성 실하게 일함의 기준은 주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빨리빨리 문화’와 ‘눈치 문화’ 그리고 ‘군대식 문화’에서 성장한 한국사람이라면, 성실함은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는 덕목이다. 따라서 나에게 캐나다의 느긋한 업무 문화는 너무 쉽다. 덕분에 3년 차 연봉협상 때 예상도 못한 10% 연봉 인상을 받았고, 같은 날 회의실에서 사장의 ‘Everyone loves working with you.’라는 칭찬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느 찬사보다도 뿌듯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경험하고 싶다


2021년 7월 바라던 캐나다 영주권이 나왔다. 애초 계획보다는 조금 늦은 목표 달성이지만 성취감은 매우 컸다. 그리고 현재 두 가지 계획이 생겼다. 하나는 건축 설계 경력을 유지하며,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호주와 영국을 생각하고 있지만, 먼저 캐나다에서 저년차 경력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서 영어실력과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으로 확신한다.


다음은 학교 파트타임 강사를 하는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밝힌 이유는 Architectural Technologist를 계속 주 업무로 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공부했던 학교에서 공식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데, 매 학기 한 학생을 배정받아, 회사 실무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학생을 지도하며 파트타임 조교와 강사가 될 초석을 쌓는 중이다. 파트타임 강사와 학교 조교(Teacher Assistant)는 실무 경력 5년이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경력이 채워지는 대로 먼저 학교 조교를 지원할 생각이고, 추후 경력이 더 쌓이면 학교 파트타임 강사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계획들은 캐나다 이민 계획처럼 5년이란 별도의 시간을 두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 지낸 8년, 나이에 대한 촉박감이 없어졌기 때문인데, 혹자의 말을 빌리며  수기를 마치고 싶다.

인생에 늦은 것은 없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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