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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Sep 16. 2024

건축 회사 업무 영어, 너무 쉽다.

이민 1세대의 당돌한 업무 에세이-영어

지난 이야기에서 전화 영어와 회의 때 발언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는데, 이것만 제외하면 건축 디자인 회사의 영어, 이 중에서도 업무 영어는 무척 쉽다.


먼저 하루 중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유형은 아래와 같다.

사적인 대화

업무 영어

업무 외 사무실 영어


이중 난이도는 사적인 대화가 가장 어렵다. 왜냐하면 동료들과의 대화가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밴쿠버를 포함한 영미권 회사는 사무실 복도나 Kitchen에서 마주치는 동료들과 'How are you?'로 가볍게 안부를 묻는다. 특히 월요일*은 'How's your weekend?'로 안부와 주말의 생사(?) 확인으로 대화가 간결하게 끝낸다. 하지만 이후 사담이 길게 이어진다거나, 점심 식사를 같이 한다거나 또는 회사 행사에서 동료(들)와 대화 중 내가 모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그때의 영어는 정.말. 힘들다. 예를 들어,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근사한 음식점이라던가, 내가 보지 못한 영화, 또는 아직도 생소한 아이스하키나 미식축구, 그리고 내가 여행해보지 못한 곳 등등 배경 지식이 아예 없는 대화들과 사람 이름이나 고유 명사가 난무하는 대화에서 영어 듣기 난이도는 끝판왕이다. 거기다 업무 외적인 대화에서 원어민의 영어 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더욱 들리지 않는다. 이런 대화에서 나는 리액션 담당이다.

*비슷한 느낌으로 금요일은 'Do you have any plans for this weekend?'가 있다.


하지만 사적인 대화라 할지라도, 내가 평소 알던 주제로 배경지식이 있다면, 그 대화의 난이도는 조금 쉬워진다. 심지어 원어민 동료의 말하기 속도까지 느려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친숙한 토픽은 위의 예들을 반대로 뒤집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가봤던 괜찮았던 식당이나 취미•여가 장소,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드라마, 좋아하는 운동 경기인 야구나 농구, 축구,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 일본 등 내가 여행했던 곳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면 나의 대화 참여도는 높아진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건축 설계회사의 업무 영어는 매우 쉽다.


먼저 매니저•동료들과 대화 토픽은 '건축 업무'로 한정된다. 매일 집중하며 일했던 것들이 대화 주제들이다 보니, 배경지식은 충분히 장착되어 있다. 여기에 내 눈앞에 도면이 있고, 그림과 자료들이 나를 도와준다. 경험이 부족한 신입-저년차일지라도 귀로는 듣고, 눈으로 도면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다. 이것은 마치 영어 듣기 시험을 치는데, 바로 옆에 커닝 페이퍼가 있는 느낌이다. 더구나 캐나다에선 사회적 약속을 한 듯이 모든 사람들이 업무에 관련해서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영어 단어들 하나하나가 내 귀에 박히는 기분이다.

재택 근무 당시 사진, 방대한 자료들에 둘러싸여 있음 - 사무실 책상은 찍을 수가 없다.

혹여나 대화 중 확신할 수 없는 사항들이 나왔다면, 적어두었다가 대화가 끝난 후 스스로 확인 뒤 필요하다면 질문, 혹은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봐도 된다. 질문은 저년차 때는 무엇이든 묻는 게 당연하고, 중년차라 해도 질문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긴가민가한 것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업무 처리했다가, 틀리고 나서 다시 수정 업무 하는 것은 큰 시간 낭비이기 때문.)


회의 영어에도 훌륭한 커닝페이퍼가 있다. 도면, 자료들과 더불어 Meeting Minute (이하 회의록)이 있는데, 혹여나 처음 마주하게 될 영어 단어들이라도 모두 회의록 안건으로 적혀있다. 이렇게 눈으로 먼저 익힌 단어들은 실전 대화 때 훨씬 더 잘 들린다. 여기에 기술 발전의 AI도 한 몫한다. Zoom이라는 화상 회의 플랫폼은 화상 회의가 끝난 후 Meeting Notes를 생성해 주는데, 아주 약간의 실수는 있지만 AI의 받아쓰고 요약하는 수준은 제법 훌륭하다.

Zoom의 AI Meeting Notes는 회의 전체 요약은 물론, 회의 참여자의 발언까지 요약해주고, 안건별로도 정리해준다.

또 지금 회사는 사용하지 않지만, 전 회사에서 사용하던 Microsoft사의 메신저 Teams는 화상 회의 때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에 실시간 Closed Caption (자막)을 걸어준다.

Microsoft Teams - Closed Captioning 출처 Support.Microsoft.com


다른 업무 영어인 이메일 쓰기도 매우 쉽다. 비즈니스 이메일은 간결함이 제 1 원칙이다. 우리 쪽에서 하고 싶은 말만 간단한 몇 문 장만 보내면 된다. 예를 들어, 컨설턴트 회사에 확인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써야 한다면 아래와 같다.


Hi Sarah (컨설턴트),

Thanks for the confirmation. We have updated our drawings, so please review them.

Please see the attached.

Thanks,

구워홀러


너무 간결하여 쓸 때마다 매번 박절하게 느껴지는데, 위와 같은 이메일이 맞는 이메일이다.


상대방의 이메일을 읽고 확인하는 것도 쉽다. 상대로부터 오는 이메일도 위와 같은 이유로 간결하기 때문인데, 간혹 장황하게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리고 간결한 이메일일지라도 10개 정도 연달은 이메일들을 (Email Chain) 읽고 확인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수능 언어영역 비문학 독해와 외국어영역 지문 독해 스킬(?)을 사용하면, 모두 해결된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집중, 예시와 부연 설명들은 쳐내면서 지문 내 중심문장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는 기술이 밴쿠버 건축 회사에서 써먹을지 그땐 알았을까 - 업무 영어는 석차를 가리기 위해, 매력적 오답으로 함정을 파는 시험 영어 지문이 아니다.


업무 외 사무실 영어는 HR과의 대화 정도 들 수 있는데, 빈도수는 극히 적으므로 생략한다.



밴쿠버 건축회사:담 실무와 영어 편을 통해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는 컨텐츠와 용어들을 계속 올려볼 계획이다. 다음 영어 편은 주거와 주상 복합 프로젝트 때 등장하는 실무 용어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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