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회사
해마다 돌아오는 직장인의 평가, 밴쿠버의 두 회사에서 경험한 인사고과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인사고과 평가는 영어로 Performance Review 또는 Review라고도 부르는데, 해마다 일어나기 때문에 Annual Performance Review*라고도 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는 매년 6월에 있었고, 현재 회사는 11월에 있다.
*학교 후배가 다니는 15명 규모의 건축 회사와 선배가 다니는 대형 건설사는 인사고과가 없다고 한다.
60명 규모의 두 회사 매니지먼트는 전 직원을 면담하는 이 기간을 한 달 정도 잡는데, 그 이후 연봉 협상이 이어진다. 전 회사는 Performance Review 말미에 연봉 협상이 함께 있었던 반면, 현 회사는 연봉 협상이라기보다 직원의 성과 평가 후 임원급에서 책정한 새 연봉을 통보하는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두 회사 모두 인사담당자와의 면담은 수시로, 자유로운 주제와 함께 적극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꼭 인사고과 시기가 아니더라도 이 시간을 이용해 연봉 관련 사항을 꺼낼 수 있다.
실제 예로 팬데믹이 끝날 때 즈음 캐나다에 찾아온 고물가와 미친 듯이 치솟은 월세 때문에 옆자리 신입 동료는 HR에게 생활고(?)를 토로, 그의 연봉은 9,000불 인상되었다. 이를 두고 이탈리아 동료와 나는 오랫동안 입이 튀어나왔었는데, 입사 동기였던 그와 내가 3년 동안 꾸준히 인상시켰던 연봉을 이 친구는 말 한마디로 올렸기 때문. (이탈리아 친구와 나의 연봉은 5년 동안 줄곧 같았다.)
내 동료의 예와는 정반대로, 생활고라든지, 집을 마련한다든지 등의 이유로 연봉을 인상하려는 것은 금기시하라는 것이 학교 선배의 충고이다. 연봉 협상은 회사에서 개인의 성과 여부가 주목적이지, 개인 사정 여부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
What doesn’t matter with someone’s performance?
이때 받은 충격이 신선해서 아직도 그녀의 리액션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 대화를 계기로 연봉협상 때 절대 개인적인 사유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사실 단 한 번도 개인 사유로 연봉 인상을 요구한 적은 없다.)
인사고과의 형식은 회사마다 매우 비슷하다. 인사담당자가 개인 평가 설문지를 전체 이메일 하면, 직원들의 설문지가 완료된 순서와 매니저들의 업무 일정 등을 반영하여 스케줄을 짠다. 개인 평가 카드는 회사마다 다르고, 같은 회사에 새로 부임한 HR들 마다 다르다. 전 회사에서 일한 5년 동안 3번 인사담당자가 바뀌었는데, 인사고과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이번 회사는 HR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작년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질문들이 들어왔다. 예를 들어,
• 1년 동안 잘했던 점은 무엇인지?
• 1년 동안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무엇인지?
• 의사소통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 애로사항은 무엇이 있는지?
•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
• 5년 후 현재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인지?
• 과거의 목표와 현재의 목표가 무엇인지?
위 설문을 바탕으로 인사고과 평가는 회의실에서 매니저와 인사담당자, 직원 셋이 면담을 갖는다. 이때 신입이나 저년차의 경우라면 그들의 사수가 함께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느낀 인사고과 리뷰는 좋은 말 대잔치였다. 그동안 여섯 명의 매니저들과 이 리뷰를 가졌는데, 그들은 항상 칭찬을 해주었다. 듣기 좋은 말이었을지라도, 매 리뷰 후에는 나는 늘 동기 부여와 성취감을 얻었다. 그중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전 회사에서 있던 두 번째 리뷰 때의 진심 어린 표정의 사장의 말이었다.
Everyone loves to work with you.
저년차 때여서 그랬는지 며칠 동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었다.
저년차 때 함께 들어온 사수도 웬만하면 현장의 좋은 분위기를 맞혀주었다. 또한 전 회사에서의 첫 리뷰가 끝날 즈음 사수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I told you, you are not gonna fired.
라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로 인사고과 면담은 캐주얼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예로 다소 깐깐한 매니저를 둔 이탈리아 동료는 리뷰 때 사장 앞에서 그의 박절한 평가에 많이 좌절했었다. 또 다른 동료는 인사고과 때 매니저가 그녀의 연봉을 2,000불을 올려준다는 말에 그의 면전에 대고 'f**k off!'라고 소리쳤다는데, 마음의 소리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녀가 받은 제안은 물가상승률에 턱없이 부족한 연봉 인상으로 제 3자임에도 모멸감을 느꼈다.)
5년 동안의 인사고과 평가는 20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은데, 이번 평가는 설문 형식이 길어져서인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인사고과 면담은 취업 면접 보다 압박감이 훨씬 덜 하다. 하지만 면담을 들어가기 전 설문의 문항들을 숙지하고 대답들을 연습하는 것이 좋다. 외국어로써의 영어가 서툰 것을 둘째 치더라도, 반복된 연습을 통해 실전 면담에서 말할 답변에 자신감이 묻어 나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연습했던 인사고과의 답변들은 아래와 같다.
• 1년 동안 잘했던 점은 무엇인지?
5년 동안 주상복합 프로젝트만 했는데, 올해부터 병원 프로젝트를 도와주기 시작한 점을 먼저 밝혔다. 두 프로젝트는 용도가 전혀 달라, 개인이 5대 5로 주장복합 프로젝트와 병원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하이브리드로 목적이 전혀 다른 두 프로젝트를 업무 가능하다는 점을 어필했다. 물론, 병원 프로젝트 초반에는 모르는 것도 많았고 현재도 많이 배우는 중이지만 처음보다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는 점을 덧붙였다. 또한 OOO와 함께 Contract Admininstraion 단계의 서류 작업을 처음으로 맡아봤고, 꾸준하게 Detail Drawing들을 OOO으로부터 배웠음을 전했다. 또한 협력 회사와의 회의 때 발언량이 많아졌음을 강조했다.
영미권에서는 겸손하면 치명적으로 불리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자신감이 붙은 것들을 경험과 사실에 기반하여 분명히 밝혀야 한다.
• 1년 동안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은 무엇인지?
입사 후 줄곧 Working Drawings 업무만 했기 때문에, Design Development 단계의 업무도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고층 빌딩 프로젝트에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를 살리고 싶다고 했다. (현재 맡은 프로젝트는 병원과 중저층 빌딩이다.)
• 팀원들과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는 편인지?
의사소통은 Written Communication을 선호한다고 했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신속하다는 편리함이 있지만, 메시지를 통해 정확하고 간략한 문장과 그림을 첨부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매니저의 피드백은 효과적인 Communication은 성공과 직결된다고 하며, 커리어 성장을 위해서는 Comfort Zone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충고를 받았다.
이번 인사고과 이후에 커리어 네트워크 모임을 참여했었는데, 다음 인사고과 전까지 더 많은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의사소통 능력을 보강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 팀원들과 의사소통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의사소통에 불편한 점은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다.
• 애로사항은 무엇이 있는지?
없다고 답했다.
• 회사에 피드백을 줄 것이 있는지?
매니지먼트의 적극적인 친절한 회사 문화를 만들려는 점에 감사함을 표했고, 주선한 다양한 친목 활동들을 통해 동료들과 더 친해졌다는 후기를 전했다.
• 회사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
연금 매칭 복지 상품을 도입할 수 있는지 건의했다.
• 5년 후 현재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인지?
정확히 4년 후에 현업 만 10년을 채운다 말하며, 시니어 테크놀로지스트로 승진하고 싶고, 저년차 동료들의 멘토십을 하고 싶다 전했다. 욕심을 내어 BIM Lead 포지션도 희망한다고 했다.
이틀 후 두 매니저(병원 프로젝트와 주거 프로젝트)와 인사담당자의 피드백이 적힌 인사고과 카드를 받았다. 대부분 설문지상 나의 답변에 대한 ‘동의함’과 ‘Potential’이라는 단어들로 평가되어 있었다. 특별하게 의사소통에 대해 보완해야 한다는 리뷰가 있었는데, 이 점은 앞으로 1년 동안 더 적극적인 업무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회사 편은 개인적인 인사고과 TMI을 다뤘다. 다음 회사 편은 인사고과에 이은 6년 동안 있었던 나의 연봉 인상률에 대해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