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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Nov 26. 2024

밴쿠버 건축회사의 현장, Site Visit - 5년

이민 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실무

이번 실무 편은 5년 차 때의 현장 방문, Site Visit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현장 방문은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을 맡았느냐에 따라 개인차가 상당하다. 나는 6년 동안 1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대부분 Working Drawings* 단계의 도면 준비였다. 하지만 팀 이동이 잦았고, 이동하면서 일했던 프로젝트들도 함께 달라졌다. 거기다 다수의 프로젝트들의 최종 건설 도면을 완성시켰음에도, 프로젝트가 엎어진다든지 오랫동안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하여, 5년 동안 있던 전 회사에서는 단 네 프로젝트만 현장을 방문했고, 이 중 두 프로젝트의 완공을 봤다.


*Working Drawings: Building Permit, Issued for Tender, Issued for Construction, 프로젝트 중후반기




지난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저년차의 현장은 선임과 매니저의 뒤만 따라다니며, 사진 촬영이나 현장 보고서* 작성이 그들의 몫이었다면,  4-5년 차부터는 책임감이 더 높아진다. 이때부터는 Site Visit 목적에 따른 리뷰 아이템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로 보고서를 만든 뒤 맨 아래 자신의 서명까지 포함시킨 뒤 현장에 이메일을 한다. 또한 리뷰 중 현장에서 시정돼야 할 부분을 발견했다면 Site Super**에게 알려주고 후에 고쳐진 곳의 사진들을 현장으로부터 전달받는다.


*보고서는 Site Report로 회사마다 탬플릿이 정해져 있다.

**Site Superintent의 준말로 현장 소장이다.


이번 이야기에 소개할 현장 리뷰의 목적은

1. 고층 주거 빌딩의 Unit 내부 점검으로 Insulation과 Fire-stopping이 적절하게 설치되었는지 확인

2. 레노 프로젝트의 현장 리뷰 아이템으로 천장의 높이와 현존하는 설비 확인

이다. 프로젝트의 내 '현존하는 것/상태'는 영어로 Existing라 하고, 이들을 확인하는 것을 Investigation이라고 한다.


고층 타워의 경우 개별 아이템 확인일지라도 층수에 따라 며칠의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공사가 현재 진행형이므로, 고층으로 갈수록 낮은 완성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개별 아이템의 확인을 위해 건축회사는 주 단위로 프로젝트를 방문을 한다. (지상의 타워 부분은 1주일에 한 층씩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좋다.)


Residential Unit의 Insulation과 Fire-stopping 설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평면도 상 벽에 표시된 Wall Tag들을 살펴봐야 한다. 건축 도면의 Wall Tag는 벽이 어떤 종류인지를 나타내주기 때문에, Insulation이 포함된 벽인지와 Fire-stopping이 필요한 벽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바닥의 정보를 식별해 주는 것은 Floor Tag, 지붕의 정보를 나타내는 것은 Roof Tag이다.


아래 도면의 경우, 마름모 안의 숫자들이 Wall Tag인데, 이 모양은 회사마다 달라서 현 회사에서는 직사각형 안에 벽의 종류가 적혀 있다. 또 이 벽들의 종류와 그것들의 세부 정보는 도면 패키지의 Wall Assemblies Sheet을 확인하면 된다.

실무 도면은 모든 벽에 Wall Tag가 달려 있어야 함 (개인 강의용 프로젝트)


위 도면 상 P3는 화장실에 수도를 공급하는 Plumbing Wall로 화장실의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Insulation이 추가된다. 따라서 위 도면의 프로젝트를 점검한다면, 해당 벽 안에 단열재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아래 사진은 Fiberglass Insulation (Batt Insulation) 단열재를 보여준다.


참고로 현 회사에서 Insulation가 있는 벽은 Wall Tag에 첫 머릿글자 i가 추가된다. 예를 들어, 위 도면의 벽은 P3가 아니라, P3i가 되는 식이다. 나는 이 시스템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는데, 도면패키지의 Wall Assemblies Sheet을 들춰보지 않더라도도 단박에 단열이 된 벽임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Fire-stopping은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내화(耐火)에 관련된 아이템이다. 주거 프로젝트의 Unit들 간의 벽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벽들은 1시간 동안의 내화가 필수인데, 위 도면에서 P4에 해당한다. 또한 도면에는 미처 나와 있지 않지만, 실무에서 평면도의 내화 벽들 위에 FRR*노트가 특별히 표시된다.


FRR 기호는 아래 같은 직선 형태로 내화 벽들 위를 따라 표시된다.

0분: 0 Hr - 0 Hr - 0 Hr - 0 Hr
60분: 1 Hr - 1 Hr - 1 Hr - 1 Hr - 1 Hr
90분: 1 1/2Hr - 1 1/2Hr - 1 1/2Hr - 1 1/2Hr
120분: 2 Hr - 2 Hr - 2 Hr - 2 Hr -  2 Hr

*FRR: Fire Resistance Rate


아래의 예시 사진 중 왼쪽의 1번의 벽은 Fire-stopping 처리가 안 된 벽이고, 오른쪽의 2번의 벽은 Fire-stopping이 처리된 내화 벽이다. FRR은 건축회사에서 큼직한 실무 아이템이므로 다음 실무 편에 상세히 이야기해 보며 아래 사진들도 함께 다룰 예정.

만약 Site Visit 중 프로젝트의 평면도 상에 FRR이 기록된 벽인데, 위 왼쪽 사진의 1번 상태라면, 반드시 Site Super에게 시정을 요청해야 한다. 추후 현장으로부터 해당 벽이 시정되었음을 통보받을 때에도, Fire-stopping이 추가된 사진을 증거(?)로써 함께 제출받아야 한다.




건설이 시작되기 전 레노 프로젝트는 위의 프로젝트의 현장 방문과 사뭇 다르다. 목적은 현재 천장*의 높이를 체크하는 것과 한 천장 위로 어떤 기계들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현장 방문임에도 아직 시공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Hard Hat이나 Toe Boots 등은 지참하지 않았다. 또한 천장 위로 기계들이 지나가는지, 기계들이 지나간다면, 이 기계들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Mechanical Engineer도 동석했다.


*현재 천장, 현재 있는 기계들은 모두 Existing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Existing Ceiling (Height), Existing Ductworks 등으로 말한다.


이 현장은 선임이나 매니저 동행 없이 나 혼자만 참여했는데, 혼자서 현장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서투룰 수 있었던 Site Visit의 후기들을 나열해 본다.


1. 다른 Consultant 도면들 숙지하기 - 이 프로젝트의 경우 현재 구조가 결정적이었는데, 구조와 기계 도면을 미리, 그리고 많-이 숙지했어야 했다. ‘도와주는 프로젝트'이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했지만,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핑계일 뿐,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현장 방문 전, 건축 도면 외 협력업체들의 도면들을 최대한 많이 숙지해야 한다.


2. 전체 도면 출력해 가기 - 나는 확대 도면 (Enlarged Plan)만 출력해 갔는데, Mechanical Engineer가 전체 도면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다음 현장 방문 때는 필요가 없더라도 전체 도면도 뽑아가기로 했다.


3. 천장의 어느 지점을 열었는지 표시하기 - 천장의 세 군데를 열었는데, 도면에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야 했다.


4. 줄자 재는 연습하기 - 지금까지 Measure Tape을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 현장 방문은 필수 요소였다. 현장을 가기 전 유튜브로 '프로처럼 줄자 재는 방법'을 검색해 보고, 미리 현장에 도착하여 연습을 했다.


5. 현장 사진 찍기 전 반드시 Reference Point 사진 먼저 찍기 - 천장 내부 상태를 사진 찍기 전에 Reference Point를 찍었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찍어놓은 수십 장의 사진들의 구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첫 두 사진이 Reference Point들이다. TMI로 동석한 엔지니어는 브래들리 쿠퍼를 닮았다.)


이번 현장 방문은 명확히 현재 상태가 어떤지만 확인하는 Investigation으로, 현장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프로젝트 폴더에 OOO Investigation이라는 폴더를 만들고, 촬영했던 사진들과 평면도/RCP*에 참조 번호들을 달았다.


*Reflected Ceiling Plan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으나, 보통 현업 3-5년부터는 현장을 방문하게 된다. 운이 좋다면(?) 이르면 이를수록 현장에 갈 수 있고, 더 운이 좋다면(?) 혼자 현장을 가게 된다.


현장을 가면 프로젝트를 눈앞에서 보며, 여러 시공 지식을 배울 수 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커리어의 내공으로 이어진다. 또한 책임감이 강제로 높아지는 '혼자' 현장을 가게 된다면 이 내공은 더 많이, 더 빨리 쌓일 것이다. 앞으로 있을 n연차의 Site Visit 이야기를 실무 편에 계속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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