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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Nov 27. 2024

밴쿠버 건축 회사, 6년 만에 영어가 늘었다.

이민 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영어

밴쿠버 건축회사를 만 6년째 다니고 있는 요즘, 부쩍 영어가 늘었다는 느낌이 크다.

여기서 말하는 영어는 실무 영어나 회사 영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한 언어로서의 영어이다. 그리고 문법적 문학적의 영어라기보다 실생활에서 쓰는 말하기 듣기의 영역이다.


이 영역이 향상되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는데, 가장 먼저 회사 동료들이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는다는 것. 예전 같으면 나의 진한 한국어 액센트**, 불명확한 발음과 소리 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다. 심지어 식당이나 주점에서 주문을 할 때도 한 번에 종업원이 알아들은 적이 별로 없다. 덕분에(?)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 전부터 겁을 먹곤 했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내 말을 알아듣고 상호 간 대화가 부드럽게 진행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경험상 상대방이 내 말을 바로 알아듣는 경우들이 모이면, 이와 비례하여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한다. 그러면 신나서 영어를 더 내뱉는데, 청자는 자신감 붙은 나의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된다. 또 나는 자신감이 생기고, 타인은 내 말을 더 쉽게 알아듣고, 나는 이 경험에 다시 노출되고, 자신감은 또 상승한다.


이런 식으로 영어가 자가 발전하는 무한 루프에 들어간 격인데, 자연스럽게 영어 공포증에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요즘은 회사 주방이나 휴게실에서 마주치는 사장단과 임원들과도 대화를 먼저 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전 같으면, 대화라도 잡힐까(?) 도망 다니다시피 자리를 떴다.


*다른 회사 직원, 식당 종업원, 길거리의 행인 등

**영어로는 형용사 Thick을 쓴다.


다른 경험은 주위 동료들의 대화를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구나!’ 받아들이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것은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사람, 지인들끼리 걸어가며 하는 대화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배경 지식이 없는 제삼자들의 영어는 내 귀에 ‘정보’라기보다 ‘소리’로만 들렸었다.


한 가지 경험을 더 들건대, 사무실 수화기 너머의 영어가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여 전화받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워졌고, 회의 때 발언량이 부쩍 늘었다. 사실 이것은 영어를 잘하느냐 못 하느냐를 떠나, 그것이 익숙하냐 덜 익숙하냐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연히도 내가 영어가 늘었다고 느끼는 시기와 겹쳤다.

한 번은 내가 첫 건축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20년 전 캐나다에 이민 온 지인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늘지 않던 나의 영어 고민에, 대뜸 내가 캐나다 온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다. 4년 조금 넘었다고 답하니,

그럼 OO의 캐나다 나이는 네 살이야. 지금 OO가 말하고 듣는 수준은 딱 네 살짜리인 거지.


일리가 있었다.


내가 줄곧 여겼던 한국에서 9년 동안 공부한 “영어”는 초•중•고등학교의 시험용 종이쪼가리의 영어였을 뿐, 지인의 말대로 캐나다 도착한 날부터 내 영어 나이는 0살이었다. 또한 그의 말을 빌려, 한 사람이 태어나 그의 모국어를 습득하는데 물리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듣고 말해야 하는 절대적 양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다음 달 12월이면 나는 캐나다에 온 지 만 10년이 된다. 이제 캐나다 나이 열 살, 한창 쫑알거릴 나이 국민학교 3학년.


현재 한국에서 해외 취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또는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분들께, 당신의 영어 나이가 몇 살인지, 그리고 더딘 영어 실력 향상 곡선에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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