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간을 건네는 일이다. 사랑을 배우려면 와이프앤허즈밴드로 가자.
사랑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달렸다고 믿는다. 교토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카페 ‘와이프앤허즈번드(Wife&Husband)’는 그런 사랑이 스며 있었다.
여러 해 전, 생일 선물로 받은 잡지가 하나 있었다. 매거진 B의 교토 편이었다. 그 잡지에 소개된 카페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가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와이프앤허즈번드’였다. 자칭 ‘북가좌동 최수종’(요즘엔 올드한 느낌이라 ‘북가좌동 션’이라 미는중)이자 사랑꾼 꿈나무에겐 필수 코스라 생각했다. 이름부터 ‘아내와 남편’이라니 한국 대표(?) 사랑꾼과 일본 대표(??) 사랑꾼의 역사적인(???) 만남을 꿈꿨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어느 누가 말을 했던가? 그것은 참말이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처음 방문하려 했을 때, 두 번 생각할 거 없이 교토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와이프앤허즈번드’가 있는 그 교토.
그날이 왔다. 카페 ‘와이프앤허즈번드’를 가는 날. 숙소에서 대여한 자전거를 타고 카모강을 따라 달려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하고 갔는데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대기줄이 있었다. 질서 있게 서 있는 사람들 주위로 카페에 대한 기대감이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밝고 상기된 얼굴과 알 수 없는 말에서 전해지는 알 것만 같은 마음들이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작은 카페 전면에는 나무로 된 의자 무리가 단정하게 열매처럼 열려 있었다. 그 밑에는 역시나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차곡차곡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대기한 순서대로 안내를 받았다. 나는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바 테이블 한 켠에 앉았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커피와 디저트가 어떤 정성과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지는지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문한 건 커피와 허니치즈 토스트였다. 커피를 주문할 땐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데 시그니처 블렌드 이름이 걸작이었다. DAUGHTER, SON, MOTHER, 그러니까 ‘아내와 남편’ 카페의 시그니처 블렌드 원두의 이름은 딸과 아들과 엄마였던 것이다.
‘아니, 저기요.. 이런 식이면 제가 한국 대표 사랑꾼이라고 명함도 못 내밀거든요? 원두 이름엔 아빠는 또 없다고요..?’
끝끝내 사랑꾼의 ‘ㅅ’도 꺼내지 못한 채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쓸데없이 심각했던 한일 사랑꾼 논란이 나의 패배로 끝나갈 쯤 커피와 토스트가 나왔다.
패배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란 이런 걸까..?
교토 커피씬의 전통을 계승하듯 다크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짙고 짙으나 이상하게 빛이 스민듯 반짝거리는 커피였다. 너의 검은 패배엔 그래도 작은 사랑의 빛을 담고 있으니 한국에 돌아가거든 사랑을 더 키워나가길 바란다는 마음이 느껴졌다랄까? 커피를 입가로 가져가 한 모금 마셔보았다. 깊었다. 묵직하지만 무겁진 않았고 쓰디쓴 패배의 맛이 느껴질뻔한 찰나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위로였다. 또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마셨을 땐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원두의 이름을 다시 기억해냈다. 내가 마신 원두는 DAUGHTER, 이 커피엔 딸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다음은 허니 치즈 토스트였다. 정성스레 토스트를 굽고 뜨거워진 빵 위에 꿀과 치즈를 발라 녹여낸 허니 치즈 토스트, 사실 조합이 사기에 가까워서 맛이 없을래야 없는 레시피였다. 나이프를 사용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포크로 콕 찍어 입 안에 쏙- 넣었다. 바삭한 빵의 식감에 더해 치즈의 쫄깃함과 짭짤함과 고소함, 여기에 화룡정점을 찍은 건 꿀이었다. 달달한 꿀이 모든 걸 감싸 안는 순간 음악이 흐르는 듯 하더니 입 안에서 무도회가 열렸다. 단짠단짠의 왈츠를 경쾌하게 추고 있는, 이름마저도 맛나는 허니 치즈 토스트. '선생님, 아니 사장님 여기 혹시 천국인가요?' 묻고 싶었지만 일본어를 모르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 카페의 운영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로 꽤 짧다. 그마저도 일주일에 3일 정도만 문을 연다. 손님은 늘 붐비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뭘까? 이들의 카페 운영 철학이 카페의 수익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 더 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건네는 일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신념이 이 작은 카페 안에 충만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았다. 그들이 손님을 다정하고 사려깊게 대할 때, 커피를 정성 드려 내릴 때, 토스트를 마음을 담아 구울 때, 포크가 필요한지 조심스레 물을 때 그 마음이 눈에 보였고 이내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우린 때때로 돈이 넉넉해야 사랑도 넉넉해진다고 오해할 때가 많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오해하는 일도 많다. 돈이 사랑도 무엇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린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랑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은 사랑하는 함께 보내는 시간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다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바삐 살아가느라 사랑이 잘 보이지 않을 땐 '와이프앤허즈번드(Wife&Husband)'로 가보자.
가려져 있던 사랑이 다시 선명해질 것이다
와이프앤허즈번드(Wife&Husband) 카페 위치
https://maps.app.goo.gl/w6KYgm2JZkcSdJpi8
와이프앤허즈번드(Wife&Husband) 홈페이지
https://www.wifeandhusband.jp/
미리 예약하고 갈 수 있다. 한국어가 지원된다. 이 곳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피크닉 세트'다. 귀여운 피크닉 바구니에 커피와 컵을 담아 대여해준다. 작은 나무의자와 테이블도 함께 대여가 가능하다. 카모강이 가까이 있어 날씨가 좋다면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서 소풍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