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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은의 Beyond Insight Mar 05. 2017

봄의 시

쉰두 번째 지난주




봄기운


 봄은 기운으로 온다. 오직 봄만이 기운으로 온다. “봄기운이 느껴진다”는 용례에서 ‘봄’과 ‘기운’ 간의 강력한 호응은 쉽사리 다른 계절의 범접을 허락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봄을 빌려 희망의 근거로 삼고는 한다. 그런데 지난해와 지지난해의 봄에도 이와 같은 작용이 일어났음은, 굳이 어떤 기록을 뒤적일 필요조차 없겠다. 어째서 우리의 희망은 1년이 멀다 하고 새것을 요구하는가? 희망의 짧은 유통기한에 한탄하면서도, 봄을 기다리며 새 희망을 담고자 하는 열망들을 외면할 도리도 없다. 그렇다. 우리의 봄은 체득한 허무로 딱딱해진 마음에, 여리디여린 새싹을 쥐여주며 온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희망과 그 덧없음의 간극에 봄이 있는 것이다. 한데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요, 그러한 자는 또 시인이다. 봄기운이 우리를 찾아온 지난주, 봄의 시를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느꼈다.









어느 봄날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¹

 

 봄은 침투한다. 며칠이었는지 기억할 필요도 없는 그저 어느 봄날, 청소부 김씨가 길을 쓸고 있다. 김씨가 쓰는 길은 계절마다 다를진대, 낙엽과 눈을 쓸던 빗자루가 어느덧 꽃잎을 쓸어 담을 즈음이면 이 계절이 온 것이다. 그런데 이 계절은 왔다 싶으면 이내 침투한다. 김씨에게는 붉디붉은 영산홍 꽃잎을 통해서였다. 화르르 꽃물 들어 봄의 주술에 걸려든 김씨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다. 고정된 김씨 곁으로, 바람이 영산홍 꽃잎을 쓸어간다.


* 영산홍 꽃잎


 우리는 TV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마치 정해져 있는 양 시나브로 여기게 되었다. 그것이 사랑이건 그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확률이건, 이 일련의 사태가 젊고, 눈길을 끄는 외모를 지닌 자의 독점적 지위로 인지된 지 오래인 것이다. TV를 끄고 거리로 나서면 그 주인공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김씨가 보인다. 하지만 김씨는 그저 길을 쓰는 사람이다. 이런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려 그런 것은 아닐진대, 아마도 김씨는 다음 해 봄에도, 그다음 해 봄에도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김씨는 ‘감히’ 사랑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봄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는다. 누가 옳은지는 애써 따지지 않겠다. 다만, 김씨가 우두커니 서 있음을 나무라지는 말았으면 한다. 봄의 일이 다 그렇다.





봄, 무량사


봄, 무량사
                                        김경미

무량사 가자시네 이제 스물몇살의 기타소리 같은 남자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어 무엇이든 깨도 좋을 나이
겨자같이 싱싱한 처녀들의 봄에
십년도 더 산 늙은 여자에게 무량사 가자시네
거기 가면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게 있다며

늙은 여자 소녀처럼 벚꽃나무를 헤아리네
흰 벚꽃들 지지 마라, 차라리 얼른 져버려라, 아니,
아니 두 발목 다 가볍고 길게 넘어져라
금세 어둡고 추워질 봄밤의 약속을 내 모르랴

무량사 끝내 혼자 가네 좀 짧게 자른 머리를 차창에
기울이며 봄마다 피고 넘어지는 벚꽃과 발목들의 무량
거기 벌써 여러번 다녀온 늙은 여자 혼자 가네

스물몇살의 처녀, 오십도 넘은 남자에게 무량사 가자
가면 헤아릴 수 있는 게 있다 재촉하던 날처럼

²


 ‘무량(無量)’. 셀 수 없다는 말이란다. 목숨을 셀 수 없고, 지혜를 셀 수 없는 곳이 바로 극락이니,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곳이 바로 무량사란다. 그런데 시인은 대강이나마 남자의 나이를 센다. 스물몇 살쯤 된단다. 겨자같이 싱싱한 처녀의 시간으로부터 10여 년을 더 산 여자에게, 남자는 기타 소리 같은 말을 전한다. “우리 무량사 가요. 거기 가면 비로소 헤아릴 수 있는 게 있어요.” 무엇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일까……? 무량사(無量寺)는 헤아리지 말라는데……. 여자는 혼란스럽다. 함께 무량사에 갈 날을 손꼽으며 흰 벚꽃들이 지지 않았으면 싶다가도, 어쩌려고 이러나 싶어 얼른 져버리란다. 아니, 아예 넘어지란다.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버리면 속 편하겠다 싶다. 봄밤에 하는 약속의 허무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자는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 봄밤을 지새운다.

** 무량사 전경

 여자의 슬픈 예기(豫期)처럼 봄밤의 약속은 금세 어둡고 추워졌다. 셀 수 없을 만치인지, 세고 싶지 않음인지, 혹은 사찰의 깊은 뜻을 헤아린 탓인지 그저 “여러 번” 혼자 가던 여자가, 또 홀로 무량사로 간다. 좀 짧게 자른 머리를 차창에 기울이며, 무엇이든 약속할 수 있어 무엇이든 깨도 좋았던 나이로 돌아간다. 그때, 오십도 넘은 남자에게 무량사 가자, 가면 헤아릴 수 있는 게 있다며 재촉하던 그 날로 간다. 무엇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었을까? 벚꽃만이 그 날처럼 흩날린다.





봄비는 그렇게 내린다 


봄비는 그렇게 내린다
                                        이승희 

 칼끝은 굳이 내 몸에 저의 생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 그 저녁의 바깥에서 내가 개처럼 나를 핥는 동안에도 날 버린 마음들 환하게 불빛으로 켜지고, 마음 없는 몸은 창백하게 앉아 뼈를 깎는다. 칼이 혀끝을 부드러운 적막처럼 지나고 눈썹 위에서 새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붉은 불빛들이 구슬처럼 흘러 천국의 불빛처럼 반짝이고, 날 버린 마음들도 황홀했다. 봄비를 맞으며 비로소 내 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먼지 같은 시간들이 뭉쳐지는 저녁, 죽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저녁은 저녁의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어둠이 흰옷을 갈아입고 이제 비로소 절망한다. 발 딛고 서있는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봄비가 내린다.

³

 

 봄이 희망이면, 봄이 온다는 신호는 희망이 온다는 신호일 것이다. 그중 봄비는 가장 명징한 신호로 이해된다. 땅으로 떨어지니, 땅에 닿는 순간 기운 운운하던 실체를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여겨지는 탓일 게다. 그런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했던가……. ⁴ 마침 봄비가 내리자 비로소 내 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자신은 이제 발 딛고 서지 않을 테니, 새롭게 발 딛고 서는 존재를 축복하기 위해 봄비 내릴 때 떠나려 한단다. 바통 터치하듯, 새 생명이 올 적에 헌 생명은 가겠다 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 봄비 이미지


 아무도 울지 않는 봄은 없다. 그러니 봄이, 봄비가 새로운 시작이라며 희망을 강요함은 폭력일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봄비를 맞으며 새 생명의 기운을 받잡을 때, 누군가는 떠날 순간이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고단하다. 배신당한 숱한 봄의 희망이라는 기억 속에 있을 사람들에게,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며 팔을 잡아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아직은 땅에 발 닿고 있는 우리가 봄비 내릴수록, 새싹 돋을수록, 사랑이 넘실댈수록 버린 마음들을 주워 모아 보자. 그리하여 아직은 땅에 발 닿고 있는 우리가 손 내밀어보자. 함께 봄비 맞으며…….









봄은 고양이로다


 나만 고양이 없다. 다들 고양이 있는데, 나만 고양이 없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고양이가 없더라도 괜찮다며 위로해준 이가 있었다. 시인이었다. 시인 이장희는 그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를 통해 고양이가 봄이고, 봄이 고양이라 했다. 봄의 향기, 생명력, 나른함이 딱 고양이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고양이를 사랑함은 고양이가 우리에게 주는 감각을 사랑하는 것이니, 짧은 이 계절만이라도 봄이 주는 감각이 고양이인 양 여기며 지낼 수 있겠다. 시인 덕분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런데 우리 나이로 불과 서른이 되던 해, 마치 봄비가 내리는 때라고 생각했던지, 감각의 시인이자 봄의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한다. ⁵


 다시 주지하여 말씀을 전한다. 아무도 울지 않는 봄은 없다. 그저 그대의 봄에, 고양이의 털 같은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기만을 바란다.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1920년대 동인지인 ‘금성3호’에 실린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 원문 <대구문화재단 제공>




참고

¹

 -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 비평사, 1994


²

 -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작과 비평사, 2008


³

 - 이승희,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문학동네, 2012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작과 비평사, 2001 시집 및 시 제목 참고


 - 위키백과 “이장희(시인)” 항목 참고

 - ko.wikipedia.org/wiki/이장희_(시인)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아인북스, 2017년 (원본 금성, 1924)



이미지 출처

커버 이미지 및 ****

 - 영남일보, 이효설 기자, 2014년 1월 2일 자, “희귀본·육필원고… 대구문학관 콘텐츠 ‘준비 완료’”

 - 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
   =newsView&newskey=20140102.010190801260001


*

 - 애프리님의 중앙일보 조인스 블로그, “[퍼온글]어느 봄날/나희덕”

 - 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leighton&folder=6&list_id=7897890


**

 -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 활동사진 중, “3월 불교문화순례 실시(부여 무량사, 관촉사)”

 - jabinanum.or.kr/xe/service4_2/10487


***

 - 하별의 인터넷 벙커님의 블로그, “봄비와 개나리”

 - 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5R0D&articleno=9879920TeDK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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