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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Jul 19. 2024

피난처

(신18~34)

성경 읽는 일과를 만든 뒤로 며칠 좀 자나 했더니 또다시 잠을 설쳤다. 밤새 흙탕물을 뒤집어쓴 듯하다. 몽땅 누렇게 젖었다. 그치지 않는 빗소리. 두렵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비로 인해 망연자실하고 있을 사람들이 못내 걱정되기도 한다. 살랑한 선풍기 목소리 오락가락 정신이 날리고 나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가능한 생각을 붙잡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다가갈수록 거대해지는 그것을 껴안을 무한한 품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두려움은 맡기든지 무책임히 내다버리든지, 또 감사할 건 하고 잠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이다. 지금은 그뿐이어야 한다. 그 이상은 욕심이고 자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비 오는 날이면 불안과 의심이 천장과 베란다로 향한다. 어느 날 큰 비가 온 뒤로 그렇게 되었다. 보금자리도 나를 지켜주지 못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제 그만 함께 퍼석 무너져버리자, 무너져 서로 감싸주자 말하고 싶을 만큼 하루하루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내려앉은 바닥 한편에 물이 흥건한 것을 발견한다. 나는 어리둥절 닦을만한 것을 찾아다 흥건한 것을 훔치고 짜고 훔친다. 얼굴을 하염없이 내려앉는 것도 훔치고 짠다. 심신 미약한 지경에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문제이니 감사하다고나 말한다. 모든 이스라엘이 두렵다. 덥고 습하고 모기, 오토바이에 누수와 소음, 귀마개, 고립, 상실, 온몸을 돌아다니는 류머티즘과 불면증, 부비동염, 신경증, 무기력, 온갖 가난의 표창들이 내 여름이다. 그 땅에는 무성한 줄기와 이파리들, 망상과 욕심들, 무책임한 겨울과 봄의 환희가 재앙이 되어 덮치고 있다. 아파 죽겠다. 살아남겠다면 긴 한숨처럼 노랗게 탈진하리야. 이제 그만 낙엽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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