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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22. 2024

안경 안 쓰기 놀이 시작

그토록 외치면서도 정작 내 눈앞에 안경은 보지 못했다.

내 관자놀이를 짓누르고 있는 안경다리를 고쳐쓰기나 했다.



며칠 전 잠들기 전에 메모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안경 안 쓰기 연습'


연습은 무슨 연습.

지금부터 안경을 아예 안 쓰기로 한다.

안경이 아무리 가벼워도 얼굴의 압박감, 운동의 불리함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세월이 길면 외모도 내모도 달라진다.

본래 타고난 삶이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오늘 최초의 교정에서마저 벗어난다.


얼굴이 어떻게 변하나 궁금하다.

나는 지금 보다 더 잘생겼어야 했다.

아빠도 엄마도 미남미녀이기 때문이다.

안경을 안 썼던 시절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끌려왔던 걸 돌이켜 봐도 그렇다.


안경잽이들은 공감할 테지만 우리들에게 안경은 얼굴이다.

때문에 화장품처럼 여러 가지 형태를 소유하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쌓아온 안경이 열 개는 족히 넘는다.

일 년에 하나씩 내게 선물했던 시절이 있다.


그랬던 안경을 부러뜨린다.

지금도 맨눈으로 쓴다.

나는 시력이 매우 나빠 눈에서 한 뼘 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하는 행동 역시 안경 찾기였다.


약 10분이 지났는데 괜찮다.

뿌옇지만 그런대로 근사하고 오타나 맞춤법 따위야 원래 괘념치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생각이 달라지지만 않으면 결심도 행동도 달라질 리가 없다.


멀리 있는 것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애써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보고 싶으면 묻고 듣거나 가까이 가면 된다.

다가갈 수 있는 허리와 다리가 있다.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어깨와 손도 있다.

모양만 다른 감각기관이자 해파리의 촉수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헤엄치는 법을 잊었다.

잊으면 말미잘이 된다.


당장 걱정이 있다면 표정이다.

잘 안 보이기 때문에 확실히 보기 위해, 전처럼 잘 보기 위해 한동안 눈을 찌푸리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은 어리석은 삶과 닮았다.

갖고 있던 것이 빛을 잃어갈수록 힘을 준다.

부족하면 힘을 준다.

노란색이 보라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대로 편안해지면 분명 시력도 좋아질 것이다.

다른 기관들이 회복되는 과정을 앞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삼 년 뒤 시력이 얼마나 좋아졌을지 기대된다.

삼 년 뒤 얼굴이 얼마나 더 잘생겨졌을지도 기대된다.

삼십 년 가까이 안경에 구속받았으니 삼 년이면 족히 한 번에 폭발해서 제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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