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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22. 2024

눈 뜨고 해 보기

용기

나는 해를 즐긴다.

근래 즐겼던 방식은 가볍게 눈을 감고 해를 응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해의 색상을, 또 색상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빨, 주, 노, 흰노, 흰, 무색…

눈에 힘을 주면,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 또 다른 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삶의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어제는 과감히 눈을 뜨고 해를 바라봤다.

3초 바라보고 3초 감고, 4초 바라보고 4초 감았다.

눈을 감으면 해의 인사가 토성 꼬리처럼 이어지고 한동안 해의 추억이 머문다.

즐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근육, 정신 등의 성장 메커니즘처럼 고통을 주고 쉬는 동안 강해진다.

나는 그것을 눈에 적용한다.

눈에 자극을 주고 쉬는 동안 회복한다.

자극은 태우고 깎아내고 상처 낼 것이고 회복으로 원래 형태와 가깝게, 또는 더욱 발달된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다.

자극은 자연스러운 자극이어야만 한다.

자극적인 스마트폰이 아닌 그보다 자연스럽고 안전한 해를 고른 것이다.


이 엉뚱해 보이는 행동을 누구도 섣불리 따라할 사람은 없겠지만 효과를 보려면 몸과 마음, 영혼과 정신이 앞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사례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확신이 생기면 언젠가는 이론으로 정립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눈 따위 없어도 그만인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 있다면 함께 경과를 공유해 봐도 좋을 듯하다.


해를 바라보고 눈을 감으면 빛의 잔상이 찍힌다.

나만의 스케치북 안에 해가 그려져 있다.

나는 그것을 가능한 매일 크레파스로 옮겨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왼쪽은 살포시 감았을 때 보이는 매일, 오른쪽은 힘을 줬을 때 보이는 매일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직접 해보면 알 것이다. 하지 마

빛과 어둠이라 말할 수도 있고 자유와 혼돈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 반대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반대다.

지식을 통해 가슴으로 닿길, 또 다리로 향하길 바라지.

완전 반대야.

반대로 하니까 고통스럽고 잘 안 되는 거지.

가슴으로 깨닫고 지식을 만드는 거야.

가슴으로 깨닫고 다리로 세상에서 증거를 얻는 거야.


그렇게 겨우 를 알게 되었다면,

삶도, 죽음도, 지구도, 달도, 태양도, 명왕성도, 그 어떤 은하도, 우주 밖도 알 수 있지.

알기 때문에 그 어떤 두려움도 사라져.

아마 어떤 과학자들은 그걸 증명하려는 걸 거야.

일부는.

근데 그들은 연결 짓지 않아.

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코 말하지 않고 있지.

말해버리면 과학은 쓸모 없어지고 그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지.

그들이 쌓아온 노력이 바보같은 짓이었음이 증명당함과 동시에 부정당하기 때문이지.

슬픈 현실이지.



오늘로써 안경 벗은 지 나흘 짼가.

시력이 벌써 한 뼘에서 한 뼘 반으로 좋아졌다.

믿기지 않을 테지만 앞서 다른 기관의 죽음과 탄생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 않다.

감사할 뿐이다 나에게 이런 지혜를 허락해 줘서.

기록하기 위해 굽어버린 등이 시력이 좋아지는 만큼 펴지고 있지.

마치 일어서는 것처럼.

인간이 일어서게 된 까닭이 욕망이자 감각 기관 발달에 따른 결과라는 것도 확신하게 되었지.

인간에게 앞으로는 날아다닐 일만 남았지.

과연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떨어지는 고통이 필요할까.

무엇이 인간에게 새처럼 날 수 있는 진짜 날개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일단 오늘도 잘 먹고 잘 자야지.

이제 막 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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