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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25. 2024

안욕 하기

기준

3월 19, 20, 21... 25.

엿새가 지났다.

이틀 전에 한 뼘 시력이 한 뼘 반으로 좋아진 뒤로는 잘 모르겠다.

그새 너무 적응이 돼버렸다.

반 뼘 늘어난 것만 해도 대체 얼마를 번 거야.


초점 훈련은 따로 시간을 두지 않고 생각나면 한다.

―라고 쓰면서 생각났기 때문에 기록과 동시에 하고 있다.

얼굴의 거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밤새 굳은 얼굴도 풀 수 있다.

잘 사용하지 않아 힘이 부족한 근육은 손가락이 돕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얼굴을 하게 된다.

수많은 모양의 안경 대신 로어셰크처럼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무한한 얼굴을 가지게 될 것이다. 아니다

내가 틀려 눈 실험이 망한데도 생기 있고 예쁜 얼굴을 갖게 될 거라 남는 장사다.

이러나저러나 좋다.


시력 회복을 가속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있다.

가능한 매일 해를 보고 그림을 그린다.

오히려 회복이 더뎌질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상관이가 없다.

에너지는 어차피 같다.

막히면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다른 기관이 더욱 발달하거나 전에 없던 새 줄기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지금 내 눈 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눈을 감아 본다.


시력 기준이 모호해졌다.

애당초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기준을 잡을까 말까.

어느 위치에서 무엇이 얼마큼 보이면 된다는.

그러려면 기준을 위한 것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 꼴은 못 보겠다.


한 뼘 척도 또한 손가락을 자꾸 벌리다 보면 늘어난다.

이미 도에서 도 한번 더 넘은 미까지 닿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한 뼘도 얼마나 늘었나 재어볼까.

자를 갖다 대면 재미없다.

피아노로 재어서 피아노 앞에 앉도록 유도되는 게 자연스럽다.

나는 무슨 일에서건 이런 의외성 같은 방식을 선호한다.

고정된 논리방식과 기승전결은 덧없고 재미도 없다.

규격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욱 논리적이고 기승전결이다.

그 안에서 왜 그러고들 있나 모르겠다.

대단히 홀려있다.




누군가의 피땀 섞인 빛나는 소금을 욕조에 대충 때려 붓고 물을 받는다.

온도와 농도가 맞을지 어떨지 모른다.

비슷하면 그만이고 성분이 아예 없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지금껏 그렇게 되어왔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세상이 굴러간다.


몸을 불리며 웹툰이나 좀 본다.

화산귀환이라는 볼만한 작품이 있다.


검총이라는 에피소드 편이다.

그 옛날 약선이라는 현자가 있었는데 그가 원피스처럼 세상에 무언가를 남겨버렸고 후대의 무인들이 그것을 습득하려 그가 만든 난관을 헤쳐나간다.


괘씸하다.


시련은 원래 없다.

검총도 내버려 두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욕망의 다툼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만들어낸 것이다.


힘 있고 어리석은 모두가 고통의 좁은 문을 향한다.

끝내 어떻게 되느냐, 망한다.

오직 청명, 주인공만이 검총 미로 도중에 작은 빛샘들을 발견하나 모두가 정신없이 너무 좁고 빨라 떠밀려 함께 지나칠 수밖에 없게 돼버린다.

빛은 진실을 더욱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이자 상징이다.


검총의 끝은 죽음이다.

주인공 덕에 죽음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

또 개중에 몇 사람만이 검총 이후에 대해 의심하고 추리하고 걸어간다.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이다.

어리석은 나머지는 아직 검총에 뭔가 남았을 거라 미련을 갖고 땅을 파거나 그냥 헛걸음했다, 약선에게 놀아났다고 결론 내린다.


청명이는 파괴의 끝을 넘어 걸어가 본다.

숲 속에 시냇물이 흐른다.

그 속에서 그토록 원하던 약선의 비급을 얻는다.


이런 복잡한 과정은 원래 없다.

그러나 과정을 겪어야 깨달을 수 있게 되어버린 세상이다.

미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의도했고 누군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뒤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똑똑한 사람은 알려주지 말아야 잘 사는데 초장부터 바보들이 이상한 걸 주입시켰으니 못 산다.

바보들은 잘살고 싶어 알려 드는데 알게 되면 그것으로 더한 바보짓이나 한다.

바보는 앎으로 개선되지 않으며 앎이 그들을 더욱 어리석게 만들기 때문이다.

두 방향 모두 잘못 연결되어 아름답고 신비로워진 세상 되시겠다.


가진 자들은 자신이 배운 걸 똑같이 따라 겪어 와 줘야 인정한다.

그래서 자기가 납득할 수 있어야 인정한다.

그러나 배움이 없어야 일찍 깨닫는다.

절로 아는 게 생명의 힘이자 본질이다.

그렇게 일찍 깨달은 자들을 그들은 음해하고 미신하고 질투하고 못마땅해한다.

변방으로 쫓아내 굶어 죽게 만든다.


자기는 그렇게 배워서 그렇다고 한다.

나도 똑같이 그렇게 배웠는데 나는 왜 안 그럴까요.

그들은 왜 내가 때부자인 줄 알까요.

경제적 자유를 얻은 줄로 알까요.

요즘 제일 웃긴 말 경제적 자유 ㅋㅋㅋ

왜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알까요.

왜 어떤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할까요.

나 백만 원밖에 없는데.

가진 거라곤 몸뚱이가 전분데.

세상이 정한 나이와 보통 이맘때 쥐고 있어야 할 걸 비교하면 한참 모자랄 텐데 말이죠.


돈도, 시간도, 이 몸뚱이 하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인간에게는 중력이 있고 따라서 능력도 있기 때문이에요.

여간해선 다른 별에 끌려가지 않겠죠.

좋은 별을 보는 안목이 있겠죠.

나는 별이 어떻게 죽고 태어나는지 몸 안에서 경험했어요.

또 별 속의 별들.

이게 조건이라면 조건일 수도 있겠네요.


노파심에 말하지만 나는 도사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다.

되레 미물에다 거지에 가깝다.

곧 땅 파러 가야 할, 누가 보면 불쌍한 처진데.

돈 다 떨어지면 밖에 나가 가장 덜 더러운 돈을 벌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밖에 나앉을 것이다.

바깥도 집이라 상관이 없다.

진짜 세상은 나를 지켜주는 내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수많은 근거를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세상은 날 돕는다.

세상은 날 도와주려 할 것이고 또 세상이 아닌 것은 사기를 치려 다가오다가 뒷걸음칠 것이다.


언젠가 과자봉지를 양쪽으로 쥐어 뜯으라는 비유를 든 적이 있다.

나 역시 모두의 고통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는 나의 고통을 더욱 모른다.

모두라는 인지의 범위가 나보다 좁은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그동안의 시련들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체, 정신, 사회로부터의 상실, 고통들은 모두 거대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의 괴물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두'라는 것을 제법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권력이 까불면 실컷 윽박지를 수 있고,

알기 때문에 약해보이기로 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작고 다정할 수 있다.

최후의 껍데기마저 찢고 나오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버튼 하나로 무엇이든 얼마든 변할 수 있게 된다.


모르니까 하는 사람은 못하게 되면 절망한다.

아니까 하는 사람은 하지 못하게 돼도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기 때문에 어떤 시련이 닥쳐도 늘 행복하고 삶에 감사한다.

앎과 모름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처럼 멀고 극단적이다.

인간의 역사가 그렇게 사이를 벌려 놓았다.




뜨거운 물을 몇 번 더 리필했다.

그러는 동안 코를 몇 번 풀고 방귀도 몇 번 뀌었고 소변도 봤다.

탕 안에서 소변을 보려면 허리를 슉 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수압 때문인지 잘 안 나온다.


여기서 아, 더러워... 하면 안 된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분별할 줄 모르는 하수다.

또한 실험은 본능적 발견의 시도다.

가스와 침 등의 분비물, 소금, 수돗물, 기타 등등이 눈에 침투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지 현미경과 지식 밖에서 확인하려는 귀여운 호기심이다.

그것들은 모두 개별성을 가진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양귀비가, 또 누군가, 아이들의 소변으로, 또 피로 목욕을 왜 했을까.

아무도 안 궁금한가 보다.


그러면서 좁혀 나가는 것이다.

과연 개중에 어떤 조합이 시력 회복에 도움을 줄지.

무엇이든 가장 넓게 시작해야 한다.

마음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그 앞서 가장 좁아져야 한다.

뻥—폭발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뻥—폭발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넓은 게 깨져야 한다.

그래야 무한에 진입할 수 있다.

깨지면 스스로 모를 수가 없다.

누적된 어리석음만큼 강력한 폭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좌절하고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 과정이다.

누가 어떤 고통 가운데 있던지 구분지은 종류와 순서와 강도만 다른 과정이다.

300% 믿어도 된다.

당신은 끝내 발견할 것이고 그로부터 잘 살고 잘 죽을 것이다.

잘 죽어서 잘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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