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회재 Mar 26. 2024

삶의 빛을 찾는 법

지혜


오늘내일 비가 올 모양이라 해그리기는 글러먹었다.

그리고 당장 내 머리 위에는 전구가 밝혀져있다.

그러나 안경과 같이 새싹의 싱그러움을 그리워해 만든, 언제나가 될 수 없는 전구알을 주시하는 건 내키질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의 대체물들도 원리는 같겠지만 내키지 않는다.

인간은 늘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이다.

전구를 보면 그런 인간들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시력 회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TV가 눈의 일에 무해했다면 내가 안경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 배 아픈 안경 업자가 TV, 컴퓨터와 협업하지 않았다면 내가 안경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빠의 안경이 그날 그 테이블 위에 놓여있지 않았다면 내가 안경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안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인간이...


생각으로 만든 것들은 싫다.

초심과 달리 생각이 마음을 넘어선 것들은 싫다.

마음이 생각에 빠져 욕망으로 변질된 것들은 싫다.

마음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을 원한다.


삼십 년 가까이 내 몸의 일부였던 안경과 단칼에 작별할 수 있는 이유는 앞서 6년간 복용했던 신경정신약물을 끊었을 때 가장 주요했던 마인드와 동일하다.

없다고 치기.

약, 병원, 그런 거 없다.

읽흰잶, 이제 어떡할래.


오늘처럼 해가 보이지 않으면 어째야 할까.

보통은 하려던 것을 너무나도 쉽게 단념할 것이다.

구름이 껴서 안 보이니까 못 하는 게 당연하다 여길 것이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림은 지루해 버티지 못할 것이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은 단념한 뒤 딴생각을 하고 대체될 무언가를, 가짜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냥 가만히 좀 계시지.

가만 있을 줄을 몰라.

가만 있어야 생각을 물리치든 올바르게 더하든 하지 않겠니.


앞서 '오늘내일 비가 올 모양이라 해그리기는 글러먹었다.'로 첫 문장을 떼었다.

이렇게 예측하고 관습적인 사고가 달라붙으면, 또 기술 등 외부 시스템을 믿으면 인간은 곧잘 망한다.

또한 무엇도 인간의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예측은 고작 두뇌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경이 없는 나는 늘 한 치 앞, 한 뼘 앞이다.

시시로 닥치는 것을 내 발아래 두고 방법을 찾는다.


날씨가 흐리기만 한 게 아니라 비까지 온다.

마침 바구니에 우산처럼 보이는 게 꽂혀있길래 들고나가 본다.

있으면 써도 된다.

다만 알아차려야 한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불일치한다면 왜인지.

숙련이 되어 자동으로 알아채져야 한다.

기본과 중심이 마음이고 그것이 존재 안에서 가장 빛나고 있다면 머리로 알아챌 필요도 없다.

마음은 무슨 짓을 해도 틀림이 없고 세상에 이롭지 않은 게 없다.

문제는 생각과 행동에서 발생한다.


두꺼운 구름뿐 역시나 해가 안 보인다.

구름이 빗물을 튕겨 해를 찾는 것을 훼방 놓는다.

그러나 마음은 아무런 제약이 없다.

얼굴로 빗물을 삼키며 구름 여기저기를 헤쳐 본다.

가장 밝은 구름을 찾는다.

찾다 보니 어떤 구름 즈음에서 눈이 시큰거린다.

눈물이 고인다.

'맞아, 해를 보면 눈물이 났었지'

지혜는 경험에서 나온다지만 머릿속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작업은 아니다.

따라서 기억력과 무관하다.

유사한, 유용한 상황에서 절로 내리 꽂히는 게 지혜다.

생존력.

지혜는 실시간으로,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눈물나는 구름덩이를 실컷 쳐다보았다.

눈 부시지 않으니 계속 쳐다볼 수 있었다.

흐르는 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뒤섞여 모를 때까지 한참 바라 보고 눈을 감았다.

공간에 선명한 태양이 찍혔다.




삶에 구름이 껴도 비가 와도 누구나 태양을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전 06화 안욕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