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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27. 2024

눈에 슬픔 모으기

흥분


연이틀 비가 내리기로 했으므로 하루는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외부자극이 아닌 내부감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시작을 그곳으로 정한 눈물을 만나기 위해서다.

거의 모든 내부감정의 출처는 외부자극의 반응과 저장, 숙성이므로 시작점을 강제로 내부로 정해야 한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비는 멈춰버렸고 새들 바삐 침 흘리며 날아다니는 쾌청한 하늘.

그러거나 말거나 하기로 했으면 천재지변 아니면 웬만하면 한다.

딱히 땡기는 것도 없고.


비가 오는 셈 친다.

그랬더니 틱. 틱.  텩.텩.쳑.쳑.쳑.쳑.쳑.쳑.쳐쳐쳐쳐쳐쳐쳐쳐―비가 온다.

비가 오니 하늘 따라 눈물을 흘려볼까 한다.

슬픈 영화.

이따가 슬픈 영화를 봐야겠다.

내 안에 슬픔이 펼쳐질 공간을 만든다.

그랬더니 틱. 틱.  텩.텩.쳑.쳑.쳑.쳑.쳑.쳑.쳐쳐쳐쳐쳐쳐쳐쳐―비가 온다.


준비가 되었다.

이만하면 유쾌한 반란의 영화를 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슬픈 영화를 고른다.

쿠플에 '슬픈 영화'라 입력하니 비상선언이 나오고 찰리와 초콜릿공장도 나오고 해리포터도 나오고 고질라도 나오고 존윅도 나온다.

보통은 왜 이게 슬픈 영화야 서비스가 엉망이네 생각할테지만 슬픔이 없는 영화는 없다.

슬픔을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관객만 있을 뿐.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해방되면 언제 어디서나 곧장 눈물 흘릴 수 있다.

또 다 집어던질 만큼 화낼 수도 있으며 니카가 된 루피처럼 깔깔 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쓴 김에 세 가지를 바로 해본다.

곧장 턱이 진동하며 눈물이 맺힌다.

입가심하듯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 왜 이렇게 맛이 없어!!!" 화장실에 던져버렸다.

이 어리석은 행동이 지나니 나사 빠진 사람처럼 깔깔깔 웃었다.

세 가지를 드러내는 데 10초나 걸렸을까.

그러는 동안 감정의 경험은 그 무엇도 떠올리지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몸을 운용하거나 당장 주변에 보이는 사물을 가져다 감정 이야기를 짓는 것이다.


마음, 생각, 몸. 자기 것은 크게 이뿐이다.

누구나 바깥이 아닌 자기 것, 본래 자기에게 주어진 것부터 잘,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야 어디 아프지도 않고 생각, 감정, 또 그 밖의 것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글도, 노래도, 악기도, 물감도, 축구공도, 컴퓨터도, 요리도, 세상 모든 드러남의 기본이 그렇다.

자신을 99.7% 이상 알고 그것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 세상에서도 잘하지 못할 게 없다.

그게 인간의 기본이다.

상식이고.


비상선언은 봤고 해리포터는 너무 길고 고질라도 봤고 존윅시리즈도 다 봤다.

초콜릿 공장은 봤나 안 봤나 모르겠다.

기억 안 나니까 이걸로 고른다.

스크롤을 더 내려봤자 의미가 없다.


이 타이밍에 아버지에게 문자가 온다.


'야구 배구 축구 다 한다~~ 바쁘다 ^^'


아, 오늘은 뭔가 많이 하는 날이구나.

이따가 축구라도 잠깐 봐야 하나 잠시 추를 기울여보다가 그냥 내 갈길 간다.

월드컵 4강 경기 정도는 되어야 내 주의를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시청에 앞서 초점 놀이를 위해 규칙을 하나 정하기로 한다.

오늘은 두 뼘.

눈과 태블릿 화면 거리를 그만큼으로 유지한다.

유지되려면 아쉽지만 고정되어야 한다.

아빠 다리를 하고 등을 소파 무릎에 기대 고정한다.

화면이 누구인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

자막이 안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영어라 못 알아들어도 어쩔 수 없다.

몸을 고정한 채로 에너지만 움직이게 한다.

나는 식물이다.

줄기 뻗는 에너지를 눈에 집중한다.



'이 이야기는 찰리 버켓이란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집안도 권력이나 돈과 거리가 멀었죠. 사실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엄청 행운아였죠. 자신은 그걸 몰랐지만요.'


자신이 행운아란 사실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는 사실을.

그런 김에 벌써 한 번 울어볼까?


뿌에에에엥—줄줄줄...


웡카 이야기가 나오고,

그가 공장을 폐쇄하고,

티켓을 심어 미스테리를 열 때,

돼지가 나오고,

부자가 나올 때,

살짝 위기가 왔다.

그만 봐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볼만한 게 없구나 했다.

이러면 인간은 망한다.

프레임마다 의미를 발견하거나 부여할 수도 있다.

팀버튼이란 유명한 이름의 작품이라면 매순간마다 의미 없는 장면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봤다.

다함께 얼마나 고되고도 즐거운 작업이었을꼬.

어느덧 시력 어쩌고 목적을 잊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이런 거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왜 달라지지 않는 거야? 보고도 아무것도 못 느껴서? 아님 용기가 없어서? 이대로도 그럭저럭 살만 하니까? 하씨. 어떡해야 전세를 뒤집지. 일파만파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여긴 너무 좁아서 말이지. 시작부터 너무 좁은 데에 발을 들인 것 같군. 전쟁이든 재난이든 뭐든 어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 거대한 움직임 앞에서 나는 함께 날아오르거나 부서지겠지. 과연 어느 방향이 빠를까요. 어느 팀을 응원할까. 진짜 인생 재미가 없단 말이지. 다리 잘리고 팔 잘리고 해야 재미있지. 니들이 자르는 것처럼. 그래야 감사한 줄 알지 저놈들. 진짜 뇌가 터지는 고통을 느껴봐야 알 텐데. 어휴.



어휴.

자연눈물 났다.

부모가 생일선물로 초콜릿 줬는데 티켓 안 나왔고,

그래도 초콜릿이 있잖니 하는 아빠 하며,

초콜릿 같이 나눠 먹어요,

안돼 생일선물이잖니,

제 초콜릿이니 제 맘대로 할래요,

제거니까 제 맘대로 할래요,

고사리 손으로 똑 똑 똑 나눠가지고는,

할머니 할아버지 온 가족 온이웃 다 같이 나눠 먹는다 엉엉.

왤케 예뻐 너 나중에 내 아들 해라.

왤케 다 예쁘냐 웃기고 지혜롭고 따뜻하고.

여기서 영화 끝나도 되겠네.


눈물은 왜 날까.

물이 넘실대는 게이시르, 화산,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자극,

감정,

진동,

흥분,


흥분.

흥분은 폭발이전의 단계이다.

계속 울면 또 뭐가 있을까.


작년 봄 다시 태어나 첫눈을 뜨고 또한 처음 내 손등을 보고 울었을 때.

자동으로 울음이 뻑 터져 나왔을 때.

거의 온종일 울었을 때.


쌓여야 터진다.

나는 당장엔 쌓고 있는 것이 없다.

여기에 대충 쓰고 있는 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순환시키거나 휘발시키고 있다.


그러면 여기도 언젠가 뻥 터질까.

과연 뚫릴까.

안 뚫릴 것 같은데 날 임펠다운 지하 6층에 가둬서.

이렇게 쓰면 안 뚫리겠지.

루피라도 와야 풀려날 것 같은데 말이지.

루피 언제 옴?



: 초콜릿 공장 너무 귀엽고 재미있는 영화다. 그래서 팀버튼이랑 친구하고 싶다.

: 손가락으로 눈 찢으면 잘 보인다. 당기는 힘을 조절해서 초점 잘 맞추면 안경보다 훨 낫다. 왤까.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먼 시야 정보가 필요할 때 급히 쓰면 좋다.


이렇게 하면 잘 보임. 저 인간도 실은 "와~ 잘 보인다~" 일 것. 바보들은 차별할 수도 있지 뭐. 나머지가 차별에 굴하지 않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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