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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Mar 29. 2024

점점 더 멀어져 갈 때

조정


흐리다.

흐린 도시에 앉아 있으면 하늘이 나빠 보인다.

흐린 도시에 서 있으면 도시도 나빠 보인다.

나빠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기분이 나빠져 버리게 때문이다.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도시가 도로 사람들을 공들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도시 때문에 무고한 하늘이 나빠 보인다.

회색은 죄가 없는데요.


이맘이면 파업을 하고 로켓을 쏜다.

그러지 말고 모든 시민들이 조금만 참고 한꺼번에 파업을 하면 어떨까.

듬성듬성 끼긱끼긱 꼬물꼬물대지 말고.


아빠는 지금쯤 야구 보겠지?

추신수가 못 나와 섭섭해하는 아버지와 그런 일들에 대해 전화기로 수다를 떨었다.

걱정 마셔요 아버지.

사건은 아무도 모를 때, 모두가 깊이 잠들었을 때 일어나요.

우.주.대.폭.발. ㅋㅋㅋㅋㅋ


아버지는 사실 전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바보가 아니라 감추기 선수였다.

모른 척하기 선수였다.

숫자에 대해서 툭 던져봤을 때도 다 알고 계셨다.

어떻게 아시냐 물었더니 신학공부하면 다 알게 된단다.


잠시 궁금했다.

거기엔 무슨 이야기가 쓰여있을지.

내가 배워야 할, 또는 고쳐줄 만한 게 있을지.


아빠는 오래전부터 매일 성가 같은 걸 쓴다.

오래되고 단순해 보이는 이름 모를 윈도우 프로그램으로.

그래서 가끔 괜히 불편함을 토로하신다.

나랑 놀고 싶어서.

로직 같은 최신 시스템을 조금 알려드려 볼까 하다가 만다.

일단 나도 잘 모르는 데다 자기가 편한 게 최고다.

억지로 고치는 것은...

사회에서도, 자기도 그게 왜 좋은지 모르는 놈들한테 억지로 고침 많이 당해봤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효율성 그런 것들은 덧없다.

그보다 어떤 여건에서건 온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중요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효율에서 나오지 않는다.

원곡 자체가 좋으면 누군가, 또 언젠가 예쁘게 장식 잘해주겠지 뭐.


아빠는 자기 노래로 오랫동안 지휘하고 찬양했다.

언젠가부터 그것에도 저작권 같은 게 생겨서 남의 노래를 함부로 못 부르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좋은 건 누구나 누리게 좀 베풀 수 없어?

꼭 지만 알고 지만 보고 지만 가지려 하고 손해는 죽어도 안 보려고 해 이놈들은.

빡대가리놈들 아니랄까봐 뭐가 손해인지를 전혀 몰라.


교회도 더럽다.

무엇이든 한국에 들어오면 더러워진다.

대한민국은 지구의 똥꾸녕인가.



웬일로 아빠가 영화를 추천해 줬다.

먼저 가여운 것들이란 영화가 개봉을 하고 뭐 상을 휩쓸었는데 누구 나오고 대충 그러그러하니까 좋은 영화라고.

안 봐도 아는 경지.

그리고 디어헌터, 가을의 전설.




안 보인다.

거기까지는 안 보인다.

옷가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겠지만 그건 그냥 하늘색, 보라색일 뿐이다.


안 보인다.

청소할 때가 지난 것 같은데 먼지가 안 보인다.

노래해야 하는데 분노를 찾을 수 없다.

얼후 연습도 해야 하고.

베이스로 그 곡도 무르익혀야 하고.


자꾸 멀어진다.

모든 에너지가 기록에 쏠려 있다.

눈과 눈의 이야기를 위한 완벽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청소하기 좋은 날.

연주하기 좋은 날.

산책하기 좋은 날.

뒷산가기 좋은 날.

버스타기 좋은 날.


이러면 망한다.

기록하기 위해서 눈을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어느덧 순서가 뒤바뀌어 버렸다.

이야기를 위해 궁리하면 안 된다.

이야기를 위해 궁리하면―오늘은 황사다.

'황사를 쓸어 모아서 최현석 소금 치듯이 눈알에 쇼쇼쇼쇽 뿌려볼까?'―이렇게 되는 것이다.

눈을 위한 궁리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어리석은 짓이 되어버린다.

더욱 자극적인 것을 좇게 된 얼간이 유튜버들처럼.


다가가자.

두 발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크고 진하게 확인하자.


내일의 기록을 위해 오늘 무엇을 기다릴까(X)

오늘의 눈을 위해 지금 무엇에게 다가갈까(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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